>
| 2022년9월7일_욥기42장 | 김덕종 | 2022-09-07 | |||
|
|||||
[성경본문] 욥기42:1-17절 개역개정1.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2.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4.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7.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여호와께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8. 그런즉 너희는 수소 일곱과 숫양 일곱을 가지고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가 우매한 만큼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라 9. 이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가서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 10.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 11. 이에 그의 모든 형제와 자매와 이전에 알던 이들이 다 와서 그의 집에서 그와 함께 음식을 먹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리신 모든 재앙에 관하여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위로하고 각각 케쉬타 하나씩과 금 고리 하나씩을 주었더라 12.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천 겨리와 암나귀 천을 두었고 13.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두었으며 14. 그가 첫째 딸은 여미마라 이름하였고 둘째 딸은 긋시아라 이름하였고 셋째 딸은 게렌합북이라 이름하였으니 15. 모든 땅에서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그들의 오라비들처럼 기업을 주었더라 16. 그 후에 욥이 백사십 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 대를 보았고 17. 욥이 늙어 나이가 차서 죽었더라 책을 읽다보면 마지막에 에필로그라는 것이 있습니다. 주된 내용이 다 끝나고 그 후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가볍게 이야기합니다. 욥기 42장 후반부는 마치 욥기의 에필로그와 같습니다. 그동안 욥기를 통해 욥과 친구들의 숨 막히는 설전을 보았습니다. 한 치의 양보 없이 자신의 주장만을 되풀이하는 논쟁이었습니다. 이 설전의 끝에 남은 것은 상처뿐입니다. 욥은 욥대로, 친구들은 친구들대로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이 모든 논쟁 끝에 드디어 하나님이 욥에게 나타나십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욥은 자신의 부족함을 알게 되었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고백합니다. “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욥기가 여기서 끝나도 좋은 마무리 같습니다. 영화에서 보면 사건의 결말을 자세히 다 보여주는 것 보다 결정적인 부분에서 딱 끝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면 더 많은 여운이 남게 됩니다. 이런 영화를 좋은 영화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욥기는 이런 식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욥의 신앙 고백 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상세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 뒷이야기를 통해 욥기에서 계속 반복해서 나타났던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하나님은 욥의 친구 엘리바스에게 말씀하십니다. “7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여호와께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 하나님은 욥의 친구들을 책망하십니다. 욥의 친구들이 말이 옳지 않다고 하십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번제를 드려야 했습니다. 다음으로 10절 이하에서는 욥의 회복이 나오고 있습니다. “10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욥은 굉장한 부자였습니다. 고난 가운데 이 부를 다 잃었습니다. 이제 욥의 소유가 회복됩니다. 모든 소유를 전보다 갑절로 주셨다고 말씀 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회복됩니다. 모든 형제와 자매와 이전에 알던 사람들이 다 옵니다. 자식의 복도 다시 받습니다. 욥의 새로운 딸 세 명은 모든 땅에서 가장 아름다웠습니다. 여기에 장수의 복도 더해져 백 사십을 삽니다. 아들과 손자 사대까지 보고 나이 들어 늙어 죽습니다. 이 마지막 장면은 동화의 결말과 비슷합니다. 주인공이 여러 가지로 고생을 하다가 결국 그 문제가 다 해결됩니다. 이런 동화의 특징을 표현하는 말이 있습니다. 권선징악, 인과응보입니다. 욥은 그동안 참 쉽지 않은 복잡한 인생의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그런데 그 결론은 동화적입니다. 욥에게 잘못한 욥의 친구들은 하나님께 혼나고 욥이 잘되는 것으로 끝납니다. 권선징악, 인과응보의 전형입니다. 좀 이상하지요? 그동안 우리는 욥기를 통해 인생은 단순한 인과응보가 아니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욥의 친구들의 문제를 지적할 때도 이 인과응보를 이야기했습니다. 욥의 친구들이 인과응보의 전제를 가지고 욥을 바라봤기에 오해가 있었고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욥의 마지막 결말의 이야기는 결국 인과응보를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인과응보가 맞습니까? 틀립니까? 우리가 인생을 단순히 인과응보의 틀로 봐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보면 성경에 나오는 많은 신앙의 선배들은 실패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왕자였습니다. 애굽은 당시 최 강대국이었습니다. 모세는 왕의 궁전에서 부귀와 권세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모세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을 때 어떠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까? 거친 광야에서 40년을 살아야 했습니다. 말도 안 듣는 백성들을 인도하느라 엄청 고생했습니다. 다른 민족들과 전쟁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가나안 땅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요단 동편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단순히 인과응보의 관점에서 보면 모세의 인생은 실패한 인생입니다. 바울은 어떻습니까? 바울은 잘 나가는 집안 출신입니다. 이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어떠한 삶을 살았습니까? 남은 평생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이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 매질도 당하고, 돌에도 맞고 감옥에도 갇혔습니다. 결국 목이 잘려 비참하게 죽어야 했습니다. 바울의 삶 역시 단순히 인과응보의 틀로 보면 실패한 인생입니다. 모세나 바울이 이 땅의 행복하고 풍족한 삶을 뒤로 하고 험한 인생의 길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히브리서에 보면 상 주심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라고 말씀 합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인생을 이 땅에서만 한정시켜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인생은 이 땅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늘나라가 있습니다. 영원한 하늘나라에 비해 이 땅의 인생은 짧습니다. 나그네와 같습니다. 이 땅에서의 인생만을 보면 인과응보는 맞지 않습니다. 이 땅의 삶은 단순히 인과응보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관점에서 보면 인과응보가 맞습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하게 살았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습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을 거부한 인생을 살아간 사람들은 결국 영원한 심판에 처하게 됩니다. 욥기는 인간의 지혜를 넘어선 하나님의 신비를 이야기 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도 동일해야 합니다. 이 땅의 삶을 넘어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봐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따라 살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힘든 고난의 삶이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습니다. 욥기의 마지막은 우리에게 영원한 하나님의 상주심이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줍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무엇을 소망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욥기의 마지막이 보여주는 것이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입니다. 욥이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된 계기가 무엇입니까? 10절에 보면 욥이 친구들을 위해 기도할 때입니다. 치열한 논쟁으로 인해 욥과 친구들의 사이는 틀어졌습니다. 욥에게 친구들은 자신을 공격하는 대적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을 새롭게 만난 욥은 자신의 대적자였던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는 중보자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할 때 하나님의 복이 욥에게 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깨어진 상태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사람들은 사람들과의 관계도 회복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사람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모습입니다. |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