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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8월31일_욥기 39장 | 운영자 | 2022-08-3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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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욥기39:1-30절 개역개정1. 산 염소가 새끼 치는 때를 네가 아느냐 암사슴이 새끼 낳는 것을 네가 본 적이 있느냐 2. 그것이 몇 달 만에 만삭되는지 아느냐 그 낳을 때를 아느냐 3. 그것들은 몸을 구푸리고 새끼를 낳으니 그 괴로움이 지나가고 4. 그 새끼는 강하여져서 빈 들에서 크다가 나간 후에는 다시 돌아오지 아니하느니라 5. 누가 들나귀를 놓아 자유롭게 하였느냐 누가 빠른 나귀의 매인 것을 풀었느냐 6. 내가 들을 그것의 집으로, 소금 땅을 그것이 사는 처소로 삼았느니라 7. 들나귀는 성읍에서 지껄이는 소리를 비웃나니 나귀 치는 사람이 지르는 소리는 그것에게 들리지 아니하며 8. 초장 언덕으로 두루 다니며 여러 가지 푸른 풀을 찾느니라 9. 들소가 어찌 기꺼이 너를 위하여 일하겠으며 네 외양간에 머물겠느냐 10. 네가 능히 줄로 매어 들소가 이랑을 갈게 하겠느냐 그것이 어찌 골짜기에서 너를 따라 써레를 끌겠느냐 11. 그것이 힘이 세다고 네가 그것을 의지하겠느냐 네 수고를 그것에게 맡기겠느냐 12. 그것이 네 곡식을 집으로 실어 오며 네 타작 마당에 곡식 모으기를 그것에게 의탁하겠느냐 13. 타조는 즐거이 날개를 치나 학의 깃털과 날개 같겠느냐 14. 그것이 알을 땅에 버려두어 흙에서 더워지게 하고 15. 발에 깨어질 것이나 들짐승에게 밟힐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16. 그 새끼에게 모질게 대함이 제 새끼가 아닌 것처럼 하며 그 고생한 것이 헛되게 될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나니 17. 이는 하나님이 지혜를 베풀지 아니하셨고 총명을 주지 아니함이라 18. 그러나 그것이 몸을 떨쳐 뛰어갈 때에는 말과 그 위에 탄 자를 우습게 여기느니라 19. 말의 힘을 네가 주었느냐 그 목에 흩날리는 갈기를 네가 입혔느냐 20. 네가 그것으로 메뚜기처럼 뛰게 하였느냐 그 위엄스러운 콧소리가 두려우니라 21. 그것이 골짜기에서 발굽질하고 힘 있음을 기뻐하며 앞으로 나아가서 군사들을 맞되 22. 두려움을 모르고 겁내지 아니하며 칼을 대할지라도 물러나지 아니하니 23. 그의 머리 위에서는 화살통과 빛나는 창과 투창이 번쩍이며 24. 땅을 삼킬 듯이 맹렬히 성내며 나팔 소리에 머물러 서지 아니하고 25. 나팔 소리가 날 때마다 힝힝 울며 멀리서 싸움 냄새를 맡고 지휘관들의 호령과 외치는 소리를 듣느니라 26. 매가 떠올라서 날개를 펼쳐 남쪽으로 향하는 것이 어찌 네 지혜로 말미암음이냐 27. 독수리가 공중에 떠서 높은 곳에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 어찌 네 명령을 따름이냐 28. 그것이 낭떠러지에 집을 지으며 뾰족한 바위 끝이나 험준한 데 살며 29. 거기서 먹이를 살피나니 그 눈이 멀리 봄이며 30. 그 새끼들도 피를 빠나니 시체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있느니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드라마가 최근 아주 인기가 많았습니다. 드라마의 주인공 우영우 변호사는 고래 덕후입니다. 이 드라마를 보면 고래에 대한 참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이제 인간은 자연에 대해 더 많은 지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고래와 같은 동물은 참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이런 대사를 합니다. “우리가 달의 뒷면보다 심해에 대해 아는 게 훨씬 적다는 걸 아십니까?” 심해는 수심 2000미터 이하의 빛도 들어오지 않는 깊은 바다를 말합니다. 인류는 지구를 벗어난 달에는 착륙도 하고 연구도 했지만 정작 자신들이 살고 있는 바다는 20%만을 탐사했을 뿐이다. 이 탐사한 바다의 생물을 모두 아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도 많은 해저 탐사선이 새로운 생물의 표본을 수집하기 위해 다니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수집한 표본을 보면 여전히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생물을 계속 발견합니다. 예전에 비해서 자연에 대한 지식이 월등하게 많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이 훨씬 더 많습니다. 욥기 38장은 자연의 현상들을 통해서 인간의 지식의 한계를 지적했습니다. 이제 39장은 동물들을 통해서 이 한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욥기 38장 39절부터 39장에는 다섯 쌍의 동물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사자와 까마귀입니다. “38:39 네가 사자를 위하여 먹이를 사냥하겠느냐 젊은 사자의 식욕을 채우겠느냐” 사자와 까마귀를 말하면서 이들을 먹이는 것은 누구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욥이 먹이를 달라고 조르는 사자와 까마귀 새끼를 먹일 수 있냐고 묻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산염소와 암사슴입니다. “1 산 염소가 새끼 치는 때를 네가 아느냐 암사슴이 새끼 낳는 것을 네가 본 적이 있느냐” 생명 탄생의 신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새끼를 낳고 키우는지 알지 못합니다. 세 번째는 들나귀와 들소입니다. “5 누가 들나귀를 놓아 자유롭게 하였느냐 누가 빠른 나귀의 매인 것을 풀었느냐” 들나귀와 들소는 집에선 키우는 나귀와 소와 다릅니다. 길들여지지 않아 자기가 살고 싶은 곳에 삽니다. 들소가 아무리 힘이 세다 하더라도 사람이 마음대로 데려다 일을 시킬 수 없습니다. 네 번째는 타조와 말입니다. “18 그러나 그것이 몸을 떨쳐 뛰어갈 때에는 말과 그 위에 탄 자를 우습게 여기느니라“ 타조와 말은 스피드 싸움에서 인간을 앞지릅니다. 다섯 번째는 매와 독수리 입니다. 매와 독수리는 높이 날아 사람이 갈 수 없는 험준한 곳에 집을 짓습니다. 지금 하나님이 욥에게 여러 동물들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은 동물의 신비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티브이에서 동물의 왕국을 시청하듯이 신기한 동물의 세계를 보고 감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계속 질문하십니다. 네가 이것들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야생의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고, 그들이 새끼를 낳아 기르게 하고, 살 수 있는 곳을 제공하고, 빨리 달릴 수 있는 힘과 높이 날 수 있는 능력을 줄 수 있냐고 욥에게 묻고 있습니다. 욥은 할 수 없습니다. 욥은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환경 밖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도 못합니다. 바로 이 모든 것을 다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도 않는, 우리가 있는지 알지도 못하는 저 깊은 바다의 생물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 살 곳을 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왜 세계는 이렇게나 넓고, 왜 이렇게 다양한 생물들이 살고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다만 이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아래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특별하게 예를 드신 것이 타조입니다. “14 그것이 알을 땅에 버려두어 흙에서 더워지게 하고 15 발에 깨어질 것이나 들짐승에게 밟힐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타조는 땅에다 알을 낳습니다. 흙이 그 알을 따스하게 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들짐승이 그것을 밟아 깨뜨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타조는 이것도 알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습니다. 하지만 한 번 날개를 치며 달리면 말을 탄 사람쯤은 우습게 여깁니다. 하나님은 어리석은 타조에게 또 다른 능력을 주셔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돌보고 계십니다. 이렇게 동물들을 세밀하게 돌보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들을 돌보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6: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공중의 새는 심지도 거두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들을 기르십니다. 들의 백합화는 수고도 길쌈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솔로몬의 영광으로 입은 옷보다 더 아름답게 입히십니다.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입히시는 하나님이 하물며 자신의 자녀들을 외면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저 하늘에 나는 새들보다 하나님 앞에 더 귀한 자들 아닌가요? 우리가 자연의 신비를 다 알지 못하듯이 인생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 알 수 없습니다. 왜 의롭게 사는데 고난이 닥치는지, 왜 악인은 더 형통하게 살고 있는지 그 이유를 다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아는 것은 모든 자연현상과 동물들을 통치하시고 돌보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도 역시 주관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저 동물들을 돌보시는 것 보다 더 세밀하게 우리 인생의 길을 살피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때로 우리에게 닥치는 어려움들이 이 하나님의 돌보심을 보지 못하게 할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가 할 일은 나의 무지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내가 다 알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동물들을 통해 욥에게 이 사실을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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