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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7월18일_욥기 27장 | 김덕종 | 2022-07-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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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욥기27:1-23절 개역개정1. 욥이 또 풍자하여 이르되 2. 나의 정당함을 물리치신 하나님,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3. (나의 호흡이 아직 내 속에 완전히 있고 하나님의 숨결이 아직도 내 코에 있느니라) 4. 결코 내 입술이 불의를 말하지 아니하며 내 혀가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리라 5. 나는 결코 너희를 옳다 하지 아니하겠고 내가 죽기 전에는 나의 온전함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6. 내가 내 공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아니하리니 내 마음이 나의 생애를 비웃지 아니하리라 7. 나의 원수는 악인 같이 되고 일어나 나를 치는 자는 불의한 자 같이 되기를 원하노라 8. 불경건한 자가 이익을 얻었으나 하나님이 그의 영혼을 거두실 때에는 무슨 희망이 있으랴 9. 환난이 그에게 닥칠 때에 하나님이 어찌 그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랴 10. 그가 어찌 전능자를 기뻐하겠느냐 항상 하나님께 부르짖겠느냐 11. 하나님의 솜씨를 내가 너희에게 가르칠 것이요 전능자에게 있는 것을 내가 숨기지 아니하리라 12. 너희가 다 이것을 보았거늘 어찌하여 그토록 무익한 사람이 되었는고 13. 악인이 하나님께 얻을 분깃, 포악자가 전능자에게서 받을 산업은 이것이라 14. 그의 자손은 번성하여도 칼을 위함이요 그의 후손은 음식물로 배부르지 못할 것이며 15. 그 남은 자들은 죽음의 병이 돌 때에 묻히리니 그들의 과부들이 울지 못할 것이며 16. 그가 비록 은을 티끌 같이 쌓고 의복을 진흙 같이 준비할지라도 17. 그가 준비한 것을 의인이 입을 것이요 그의 은은 죄 없는 자가 차지할 것이며 18. 그가 지은 집은 좀의 집 같고 파수꾼의 초막 같을 것이며 19. 부자로 누우려니와 다시는 그렇지 못할 것이요 눈을 뜬즉 아무것도 없으리라 20. 두려움이 물 같이 그에게 닥칠 것이요 폭풍이 밤에 그를 앗아갈 것이며 21. 동풍이 그를 들어올리리니 그는 사라질 것이며 그의 처소에서 그를 몰아내리라 22. 하나님은 그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던져 버릴 것이니 그의 손에서 도망치려고 힘쓰리라 23. 사람들은 그를 바라보며 손뼉치고 그의 처소에서 그를 비웃으리라 에레즈 에이든과 장바티스트 미셸이 쓴 <빅데이터 인문학: 진격의 서막>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들은 ‘구글 엔그램 뷰어’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구글이 디지털화 한 800만권의 책 속에 있는 8000억 개의 단어를 분석합니다. 이 단어들이 1520~2012년까지 사용된 빈도의 추이를 그래프로 보여줍니다. 이 책의 부록에는 이 프로그램을 사용한 그래프 몇 개를 예로 보여줍니다. 이 중에 ‘신(God)’과 ‘데이터(Data)’라는 단어의 빈도수를 같이 보여주는 그래프가 있습니다. ‘데이터’는 1900년까지 책에 거의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반면 ‘신’은 1800년대 중반까지는 거의 1000단어 당 1번 나올 정도로 빈번하게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900년대에 들어오면서 조금씩 양상이 바뀌게 됩니다. ‘데이터’는 1000단어 당 사용빈도수가 점차 늘어갑니다. 반면 ‘신’은 점차 줄어듭니다. 그러다 1973년을 기점으로 이 사용빈도가 역전이 됩니다. ‘신’보다는 ‘데이터’가 더 책에 자주 등장하고 많이 사용됩니다.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의 흐름을 잘 포착하고 있습니다. 이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데이터가 더 우위에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저버리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하나님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데이터보다 덜 중요한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리를 데이터가 대신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내 눈 앞에서 현실이 보여주는 데이터를 더 신뢰합니다. 그런데 욥은 이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욥이 보고 있는 데이터는 자신이 겪고 보고 있는 현실입니다. 자신은 죄가 없는데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보니 악한 자들이 떵떵거리며 살기도 합니다. 의로운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런 데이터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결론을 내리고 행동을 해야 하나요? 더 이상 하나님이 의롭지 않다는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가 살 길을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욥은 다르게 행동합니다. 욥은 맹세를 합니다. “4 결코 내 입술이 불의를 말하지 아니하며 내 혀가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리라 5 나는 결코 너희를 옳다 하지 아니하겠고 내가 죽기 전에는 나의 온전함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결코 앞으로 거짓을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죽기까지 결백을 주장하며 자신이 의롭다는 사실을 굽히지 않을 것은 굳게 맹세합니다. 그런데 누구를 두고 맹세하나요? “2 나의 정당함을 물리치신 하나님,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맹세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맹세를 하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고 고백하나요? 자신의 정당성을 물리치신 하나님입니다. 영혼을 괴롭게 하신 분입니다.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을 주신 분이십니다. 바로 이 하나님께 맹세를 하고 있습니다. 데이터를 따지면 하나님께 맹세를 하면 안됩니다.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하나님을 피해야 합니다. 거부해야 합니다. 하지만 욥은 데이터를 넘어, 현실을 넘어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이 와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지 않습니다. 그동안 자신이 알고 있던 인과응보라는 신학 체계가 깨졌습니다. 의로운 자신이 고통 받는 것은 욥이 가지고 있던 신학체계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의롭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 하나님께 자신의 의로움을 맹세하고 있습니다. 눈 앞에 명백하게 보이는 데이터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있습니다. 뭔가 도움이 될 만한 세상의 방법을 찾지 않고 응답하지 않는 하나님께 다시 한 번 호소하고 있습니다. 데이터를 넘는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입니다. 이 신뢰가 있기에 욥은 자신 있게 친구들을 향해 외칩니다. “새번역 7 내 원수들은 악한 자가 받는 대가를 받아라. 나를 대적하는 자는 악인이 받을 벌을 받아라.” 지금 욥은 자신을 대적하는 친구들을 악한 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악한 자들이 어떤 벌을 받게 되는지 자세하게 말합니다. “13 악인이 하나님께 얻을 분깃, 포악자가 전능자에게서 받을 산업은 이것이라” 자손이 많아도 그 자손들은 전쟁에서 죽을 것입니다. 살아남은 사람도 병으로 죽게 됩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모아도 그 돈을 쓰지 못합니다. 의롭고 정직한 사람이 그 돈을 차지하게 됩니다. 악한 자들의 집은 좀의 집과 같고 파수꾼의 초막 같을 것입니다. 부자로 잠자리에 들지만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아무것도 없습니다. 바람이 불어서 살고 있는 집을 다 쓸어갑니다. 도망을 갈수도 없습니다. 지금 욥이 말하는 악인의 운명은 앞에서 친구들이 말했던 악인의 운명과 비슷합니다. 악인이 당하는 벌의 내용은 비슷하지만 그 대상은 다릅니다. 지금 욥이 말하는 악인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나요? 욥을 대적하기 때문입니다. 욥은 자신을 대적하는 사람들을 악인으로 규정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결국 하나님이 누구의 편이라는 건가요? 욥의 편입니다. 욥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자신의 편이라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하나님의 편인 자기를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금 자신에게 벌을 주시고 있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욥의 편입니다. 욥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친구들의 어떤 공격에도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 또 한 가지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대적하는 사람이 처하게 되는 결과입니다. 이 땅에서 의로운 사람을 공격하는 사람이 맞게 되는 운명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의로운 사람들을 공격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당장은 이들이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사람의 편이십니다. 바로 우리 편이십니다. 내 편이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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