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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7월15일_욥기 26장 | 김덕종 | 2022-07-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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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욥기26:1-14절 개역개정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2. 네가 힘 없는 자를 참 잘도 도와 주는구나 기력 없는 팔을 참 잘도 구원하여 주는구나 3. 지혜 없는 자를 참 잘도 가르치는구나 큰 지식을 참 잘도 자랑하는구나 4. 네가 누구를 향하여 말하느냐 누구의 정신이 네게서 나왔느냐 5. 죽은 자의 영들이 물 밑에서 떨며 물에서 사는 것들도 그러하도다 6. 하나님 앞에서는 스올도 벗은 몸으로 드러나며 멸망도 가림이 없음이라 7. 그는 북쪽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아무것도 없는 곳에 매다시며 8. 물을 빽빽한 구름에 싸시나 그 밑의 구름이 찢어지지 아니하느니라 9. 그는 보름달을 가리시고 자기의 구름을 그 위에 펴시며 10. 수면에 경계를 그으시니 빛과 어둠이 함께 끝나는 곳이니라 11. 그가 꾸짖으신즉 하늘 기둥이 흔들리며 놀라느니라 12. 그는 능력으로 바다를 잔잔하게 하시며 지혜로 라합을 깨뜨리시며 13. 그의 입김으로 하늘을 맑게 하시고 손으로 날렵한 뱀을 무찌르시나니 14. 보라 이런 것들은 그의 행사의 단편일 뿐이요 우리가 그에게서 들은 것도 속삭이는 소리일 뿐이니 그의 큰 능력의 우렛소리를 누가 능히 헤아리랴 욥과 친구들의 논쟁을 보면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욥의 친구들의 논조는 변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인과응보의 교리를 가지고 욥을 공격합니다. 반면 욥은 자주 바뀌는 것처럼 보입니다. 때로는 신앙이 없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때로는 정말 신앙이 좋은 사람처럼 말을 하기도 합니다. 희망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절망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이런 욥과 친구들의 모습을 어떻게 봐야 하나요? 욥과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 신영복 선생님이 <담론>이라는 책에서 쓴 글이 떠올랐습니다. 북극을 가리키는 지남철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그 바늘 끝을 떨고 있다. 자기에게 지니워진 사명을 완수하려는 의사를 잊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며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어도 좋다. 만일 그 바늘 끝이 불안스러워 보이는 전율을 멈추고 어느 한쪽에 고정될 때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한다. 이미 지남철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남철은 나침반입니다. 나침반은 바늘이 계속 떨며 흔들립니다. 조금만 방향이 바뀌어도 북쪽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게 북쪽을 가리키려면 바뀌는 상황에서 계속 흔들리며 북쪽을 찾아야 합니다. 나침반이 이 흔들림을 멈추고 어느 때나 한 방향으로 고정되어 있으면 버려야 합니다. 고장이 났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바뀌지 않는 욥의 친구들이 모습이 더 좋아 보이기도 합니다. 초지일관 변하지 않는 일관된 논리를 가지고 있는 모습에 더 신뢰가 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말 이 모습이 좋은 모습일까요? 자신들이 생각하지도 못했던 현실이 눈앞에 벌어졌습니다. 의로운 사람이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 현실을 해석하며 논쟁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지금 자신의 논리가 정말 맞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혹시 자신의 생각이 틀린 곳은 없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현실도, 상황도, 상대방의 말도 다 무시하고 똑같은 말만 반복하는 것은 일관된 논리가 아니라 아집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나침반과 같습니다. 반면 욥은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랬다저랬다 합니다. 욥이 지금 이러고 있는 것은 욥이 마주하는 현실이 생각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바뀌는 상황과 현실 속에서 욥은 계속 흔들립니다. 욥의 흔들림은 불신앙이 아닙니다. 나침반이 북쪽을 찾듯이 참 진리를 찾는 과정입니다. 상황이 이렇기에 욥기를 읽다보면 친구들과 욥의 말이 아주 비슷한 경우가 있습니다. 친구들은 한 논리만 계속 이야기 합니다. 반면 욥은 흔들리는 과정에서 친구들과 비슷한 논리를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둘은 닮은 듯 다릅니다. 친구들은 기존에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지식에서 더 나아지지 않습니다. 반면 욥은 계속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욥기 26장에 나오는 욥의 말은 언뜻 보면 25장의 빌닷과 비슷합니다. 25장에서 빌닷은 먼저 하나님의 주관과 위엄을 이야기 합니다. 그 다음 이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미약함을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 권능 앞에서 인간은 구더기와 벌레와 같은 존재입니다. 26장에서 욥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먼저 앞에서 창조주 하나님의 위엄을 이야기 합니다. 그 다음에 이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무지함을 말합니다. 패턴은 비슷하지만 그 의미는 다릅니다. 빌닷의 발언은 전에 했던 발언의 반복일 뿐입니다. 이 반복되는 말에 욥은 조롱 섞인 비난을 합니다. “새번역 2 나를 그렇게까지 생각하여 주니, 고맙다. 나처럼 가난하고 힘없는 자를 도와주다니 3 너는 우둔한 나를 잘 깨우쳐 주었고, 네 지혜를 내게 나누어 주었다.” 욥은 친구들의 충고가 고맙다고 말합니다. 나처럼 힘없는 자를 도와 지혜를 잘 가르쳐 주었다고 말합니다. 이건 진짜 칭찬이 아닙니다. “4 네가 누구를 향하여 말하느냐 누구의 정신이 네게서 나왔느냐” 실컷 칭찬을 말을 한 다음에 되묻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그 말이 누구에게 나왔느냐고 묻습니다. 지금 친구들의 말은 쓸모없는 자신들의 지혜일뿐이라는 것입니다. 욥은 의미 없이 반복되는 친구들의 지혜를 넘어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지혜를 찾고 있습니다. 참 지혜를 가지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5 죽은 자의 영들이 물 밑에서 떨며 물에서 사는 것들도 그러하도다 6 하나님 앞에서는 스올도 벗은 몸으로 드러나며 멸망도 가림이 없음이라” 하나님은 죽음도 주관하십니다. 아무리 죽은 자들도 하나님의 주권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7 그는 북쪽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아무것도 없는 곳에 매다시며 8 물을 빽빽한 구름에 싸시나 그 밑의 구름이 찢어지지 아니하느니라” 하나님은 창조자이십니다. 이렇게 창조하신 세계를 유지하십니다. “12 그는 능력으로 바다를 잔잔하게 하시며 지혜로 라합을 깨뜨리시며 13 그의 입김으로 하늘을 맑게 하시고 손으로 날렵한 뱀을 무찌르시나니” 여기에 나오는 바다와 라합과 뱀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의 세력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능력으로 이 모든 악을 정복하십니다. 지금 욥이 고백하는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죽음도 이 세상도 악도 다스리는 통치자 하나님입니다. 이런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지식은 얼마나 보잘 것 없습니까? “14 보라 이런 것들은 그의 행사의 단편일 뿐이요 우리가 그에게서 들은 것도 속삭이는 소리일 뿐이니 그의 큰 능력의 우렛소리를 누가 능히 헤아리랴” 우리가 하나님께 들어서 안다고 하는 것들은 그냥 속삭이는 소리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에 찬 우렛소리를 우리는 이해할 없습니다. 하나님의 지혜 앞에 인간은 무지한 존재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친구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에 대해 아는 지식이 전부라고 생각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나침반처럼 고장 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향해 나침반처럼 떨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참 지혜의 원천인 하나님께 나아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미약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무지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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