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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7월11일_욥기 24장 | 김덕종 | 2022-07-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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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욥기24:1-25절 개역개정1. 어찌하여 전능자는 때를 정해 놓지 아니하셨는고 그를 아는 자들이 그의 날을 보지 못하는고 2. 어떤 사람은 땅의 경계표를 옮기며 양 떼를 빼앗아 기르며 3. 고아의 나귀를 몰아 가며 과부의 소를 볼모 잡으며 4. 가난한 자를 길에서 몰아내나니 세상에서 학대 받는 자가 다 스스로 숨는구나 5. 그들은 거친 광야의 들나귀 같아서 나가서 일하며 먹을 것을 부지런히 구하니 빈 들이 그들의 자식을 위하여 그에게 음식을 내는구나 6. 밭에서 남의 꼴을 베며 악인이 남겨 둔 포도를 따며 7. 의복이 없어 벗은 몸으로 밤을 지내며 추워도 덮을 것이 없으며 8. 산중에서 만난 소나기에 젖으며 가릴 것이 없어 바위를 안고 있느니라 9. 어떤 사람은 고아를 어머니의 품에서 빼앗으며 가난한 자의 옷을 볼모 잡으므로 10. 그들이 옷이 없어 벌거벗고 다니며 곡식 이삭을 나르나 굶주리고 11. 그 사람들의 담 사이에서 기름을 짜며 목말라 하면서 술 틀을 밟느니라 12. 성 중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신음하며 상한 자가 부르짖으나 하나님이 그들의 참상을 보지 아니하시느니라 13. 또 광명을 배반하는 사람들은 이러하니 그들은 그 도리를 알지 못하며 그 길에 머물지 아니하는 자라 14. 사람을 죽이는 자는 밝을 때에 일어나서 학대 받는 자나 가난한 자를 죽이고 밤에는 도둑 같이 되며 15. 간음하는 자의 눈은 저물기를 바라며 아무 눈도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고 얼굴을 가리며 16. 어둠을 틈타 집을 뚫는 자는 낮에는 잠그고 있으므로 광명을 알지 못하나니 17. 그들은 아침을 죽음의 그늘 같이 여기니 죽음의 그늘의 두려움을 앎이니라 18. 그들은 물 위에 빨리 흘러가고 그들의 소유는 세상에서 저주를 받나니 그들이 다시는 포도원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라 19. 가뭄과 더위가 눈 녹은 물을 곧 빼앗나니 스올이 범죄자에게도 그와 같이 하느니라 20. 모태가 그를 잊어버리고 구더기가 그를 달게 먹을 것이라 그는 다시 기억되지 않을 것이니 불의가 나무처럼 꺾이리라 21. 그는 임신하지 못하는 여자를 박대하며 과부를 선대하지 아니하는도다 22. 그러나 하나님이 그의 능력으로 강포한 자들을 끌어내시나니 일어나는 자는 있어도 살아남을 확신은 없으리라 23. 하나님은 그에게 평안을 주시며 지탱해 주시나 그들의 길을 살피시도다 24. 그들은 잠깐 동안 높아졌다가 천대를 받을 것이며 잘려 모아진 곡식 이삭처럼 되리라 25. 가령 그렇지 않을지라도 능히 내 말을 거짓되다고 지적하거나 내 말을 헛되게 만들 자 누구랴 교회 다닌지 얼마 되지 않은 청년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성경을 읽다보니 다른 종교에서 이야기하는 윤리와 비슷한 내용이 많아서 놀랐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여러 가지 윤리와 불교나 유교에서 이야기하는 윤리가 겹쳐지는 부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불교나 유교에서는 윤리적인 삶이 목표입니다. 절제와 극기를 통해 참다운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기독교 윤리는 다릅니다. 기독교에서 윤리적 삶은 목표가 아닌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신분에 맞는 윤리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같은 내용이지만 그 의미는 전혀 다를 수 가 있습니다. 욥기 24장에서 비슷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8 그들은 물 위에 빨리 흘러가고 그들의 소유는 세상에서 저주를 받나니 그들이 다시는 포도원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라” 악인들은 홍수에 떠내려가고 그들의 소유에는 하나님의 저주가 임합니다. 가뭄과 더위 때문에 눈 녹은 물이 사라지듯이 스올로 사라질 것이다. “24 그들은 잠깐 동안 높아졌다가 천대를 받을 것이며 잘려 모아진 곡식 이삭처럼 되리라” 잠시 높아지는 것 같지만 천대를 받고 곡식 이삭처럼 잘려진 존재가 되고 맙니다. 이런 악인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는 욥의 친구들이 욥을 공격하기 위해서 했던 이야기입니다. 인과응보입니다. 사람이 고통을 받는 것은 그 사람이 지은 죄 때문이라는 논리입니다. 이 논리를 가지고 고통 받는 욥을 향해 죄를 회개하라고 공격했습니다. 그런데 욥기 24장은 욥이 하는 말입니다. 욥이 친구들이 자신을 공격했던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어떤 학자는 오늘 본문 18절 이하에 나오는 이야기는 욥이 한 말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욥기 22장부터는 욥과 친구들의 세 번째 대화입니다. 이 세 번째 대화를 보면 첫 번째, 두 번째와는 달리 소발의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래서 18절 이하의 발언은 욥이 한 발언이 아니라 소발의 이야기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볼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욥이나 친구들이나 겉으로 보기에는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전제가 다릅니다. 욥의 친구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잘못알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의 한계 속에 하나님을 가두어놓고서 멋대로 하나님의 일을 판단합니다. 이 세상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외면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전제를 가지고 악인이 심판을 당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욥도 역시 하나님의 악인이 심판을 당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욥이 보고 있는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1 어찌하여 전능자는 때를 정해 놓지 아니하셨는고 그를 아는 자들이 그의 날을 보지 못하는고” 욥은 왜 하나님이 심판의 때를 정해놓으시지 않았느냐고 반문합니다. 그러면서 욥이 바라보고 있는 악한 현실을 하나씩 이야기 합니다. 땅의 경계선까지 옮기면서 가축을 빼앗아 자기 우리에 넣는 사람이 있습니다. 고아의 나귀를 강제로 끌어가는 사람도 있고 과부의 소를 볼모로 잡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길로 몰리며 세상에서 학대를 받다 견디다 못해 도망을 칩니다. 고아를 어머니 품에서 빼앗아 노예로 삼고 가난한 사람의 옷을 볼모로 잡는 악한 자들도 있습니다. 성 안에서는 죽어가는 사람들이 신음을 하고 다친 자들이 부르짖지만 하나님은 모른 척 합니다. 살인 하는 자는 새벽에 일어나 가난한 사람과 학대 받는 사람들을 죽이고 도둑질을 합니다. 이것이 지금 욥이 보고 있는 현실입니다. 어디에서도 정의는 보이지 않습니다. 악한 자들은 권세를 누리며 잘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악한 현실을 외면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욥이 지금 바라보고 있는 이 현실은 바로 욥 자신의 상황이기도 합니다. 자신은 분명 악인이 아닌데 온갖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욥은 이런 현실을 이야기하고서 18절부터 악인의 심판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모순처럼 보입니다. 정의가 없는 것과 같은 이런 현실을 앞에 두고 욥은 어떻게 악인의 심판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비록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바라보고 있는 현실을 처참합니다. 그래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여전히 하나님을 붙들고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질 것을 믿고 있습니다. 비참한 현실을 딛고서 외치는 처절한 신앙의 고백입니다. 아픈 현실을 넘어 하나님을 바라보기에 나오는 고백입니다. 시편 73편에 보면 아삽의 시가 있습니다. 여기에도 보면 아삽은 악인이 형통하는 부조리한 현실을 이야기 합니다. “12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들이라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도다” 이런 현실을 보면서 의롭게 산다고 한 자신의 모습은 다 허사 인가하는 자괴감이 듭니다. 이런 고민이 스스로에게 심한 고통이 되었습니다. 이 때 시인은 어떻게 하나요? “17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시인은 부조리한 현실의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성소로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러 갔습니다. 이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정말 하나님이 가진 뜻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악한 자들의 종말과 의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깨닫게 됩니다. 결국 현실의 고통 때문에 괴로워하던 시인은 이렇게 고백하면서 시를 마무리 합니다. “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우리가 살면서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감당 못할 일 때문에 힘들어 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욥은 지금 두 가지 부조리한 현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죄가 없는 자신이 당하는 고난입니다. 악인이 떵떵거리며 악이 판을 치는 악한 세상입니다. 이런 현실과 고통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여전히 붙잡고 있습니다. 결국 악한 자들이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예배 시간에 아멘 아멘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매일 마주 치는 삶의 현장에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한 세상에서 여전히 하나님을 붙들고 사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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