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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7월8일_욥기23장 김덕종 2022-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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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욥기23:1-17절 개역개정

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2. 오늘도 내게 반항하는 마음과 근심이 있나니 내가 받는 재앙이 탄식보다 무거움이라

3.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의 처소에 나아가랴

4. 어찌하면 그 앞에서 내가 호소하며 변론할 말을 내 입에 채우고

5. 내게 대답하시는 말씀을 내가 알며 내게 이르시는 것을 내가 깨달으랴

6. 그가 큰 권능을 가지시고 나와 더불어 다투시겠느냐 아니로다 도리어 내 말을 들으시리라

7. 거기서는 정직한 자가 그와 변론할 수 있은즉 내가 심판자에게서 영원히 벗어나리라

8.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9.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11.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12.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

13.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키랴 그의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14.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

15. 그러므로 내가 그 앞에서 떨며 지각을 얻어 그를 두려워하리라

16. 하나님이 나의 마음을 약하게 하시며 전능자가 나를 두렵게 하셨나니

17. 이는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어둠 때문이나 흑암이 내 얼굴을 가렸기 때문이 아니로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멋있는 몸을 위해서 다이어트를 하고 근력 운동을 합니다.

근력운동은 근육을 키우는 운동입니다.

근력운동을 하면 근섬유가 미세하게 손상입니다.

피부에 상처를 입으면 새살이 돋습니다.

근섬유도 손상이 되면 회복하는 과정에서 주변의 위성세포와 단백질이 붙어 좀 더 근육이 생기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반복해서 거치게 되면 좀 더 크고 튼튼한 근육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금 욥은 상처투성입니다.

원래 욥에게는 욥을 보호하던 울타리가 있었습니다.

사탄이 바로 그 점을 지적했습니다.

“1:10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지금은 이 울타리가 없습니다.

욥은 더 이상 보호받지 못합니다.

외부의 공격에 온 몸과 마음이 상처로 뒤덮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욥은 이런 상처 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좀 더 깊은 신앙의 길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상처로 근육이 성장하듯이 고난이라는 상처를 통해 신앙 근육이 자라고 있습니다.

욥기 23장은 이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앞선 22장에서 엘리바스는 욥을 신랄하게 공격했습니다.

그동안 욥의 친구들은 욥이 악인이라는 것을 돌려서 말했습니다.

엘리바스는 더 이상 그런 배려도 없습니다.

욥이 바로 악한 자라고, 그것도 권세를 이용해 약한 자들의 재물을 빼앗고 학대하는 파렴치람 이라고 비난합니다.

욥은 이런 죄를 저지른 적이 없습니다.

바로 눈앞에서 자신이 짓지도 않은 파렴치한 죄를 조목조목 나열하고 있으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입니다.

세상의 법정이라면 욥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엘리바스를 무고죄로 고소해야 합니다.

내가 죄를 지은 증거를 보이라고, 증인들을 불러오라고 따져야 합니다.

엘리바스와 시시비비를 가려 억울함을 풀어야 합니다.

 

그런데 욥은 자신을 아프게 공격하는 엘리바스에게 반응하지 않습니다.

정말 매섭고 날카로운 공격이지만 이제 욥에게는 별 아픔이 되지 않습니다.

욥이 그동안 받았던 고난과 상처들이 욥을 더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신앙적으로 더 성숙하게 만들었습니다.

욥은 자신의 죄를 고발하는 엘리바스는 무시합니다.

그 분을 하나님께 다시 향하고 있습니다.

“3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의 처소에 나아가랴

 

욥이 엘리바스의 말에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하나님을 찾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요즘 많이 사용하는 말 중에 최종보스니, 끝판왕이니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께임을 할 때 마지막 판에 가야보게 되는 최종적인 상대방을 말합니다.

최종보스가 좀 좋지 않은 이미지로 많이 사용되는 반면 끝판왕은 가장 뛰어나고 대단하는 의미로도 많이 사용됩니다.

욥은 하나님이 끝판왕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고 저런 말을 하더라도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걸로 끝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다.

공동번역 6 그가 온 힘을 기울여 나를 논박하실까? 아니, 나의 말을 듣기만 하시겠지.7 그러면 나의 옳았음을 아시게 될 것이고 나는 나대로 승소할 수 있을 것일세.”

 

하나님 앞에 호소하면 하나님이 자신의 무죄를 밝혀 주실 것입니다.

 

“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10절의 말씀은 욥기에서 가장 유명한 말씀입니다.

불순물이 많이 섞인 금속이 뜨거운 제련과정을 거쳐 순금을 탄생하게 됩니다.

보통은 이 말씀을 고난을 통해 성도의 신앙은 순금같이 빛나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 합니다.

이 이야기도 맞습니다.

욥의 경우를 봐도 지금 이런 제련의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결국 순금과 같은 신앙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문맥상 보면 다르게 해석하는 것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10절 앞에 보면 하나님이 욥이 가는 길을 다 알고 계십니다.

11절과 12절에 보면 욥은 하나님의 걸음을 따랐습니다.

하나님의 길에서 치우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기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니 자신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서더라도 순금같이 죄가 없는 상태로 인정받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욥이 하나님을 찾고는 있는데 찾을 수 없는 현실입니다.

“8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9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욥이 앞으로 가도, 뒤로 가도, 왼쪽으로 가도, 오른쪽으로 가도 하나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동서남북 어디에서도 하나님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이 욥의 말은 시편에서 시인의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139:7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9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10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시인은 하나님을 피할 곳이 없다고 말합니다.

저 높은 하늘에 올라가도 하나님은 거기 계십니다.

저 낮은 스올에 내려가도 하나님은 거기 계십니다.

내가 새벽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있더라도 하나님은 인도하시고 붙들어 주십니다.

이런 시인의 고백과 욥의 고백은 너무나 차이가 나 보입니다.

서로 다른 하나님을 말하는 거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139:1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2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3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시인도 역시 욥과 같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든 것이 다 드러난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을 피해 도망칠 곳은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욥이 말하는 하나님이나 시인이 말하는 하나님은 동일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욥이나 시인이나 동일하고 이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들이 처한 상황이 다릅니다.

시인은 이렇게 자신을 잘 아시는 하나님이 어디에서나 자신을 지켜주실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욥은 이 하나님이 자신의 무죄를 밝혀주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인의 고백처럼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는 분이십니다.

욥이 동서남북을 뒤져도 하나님을 찾지 못한 것은 하나님이 거기 계시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욥이 고난당하는 현장 바로 그곳에 함께 계십니다.

다만 하나님이 정한 때가 아닐 뿐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섭리의 때가 차면 욥은 하나님을 만날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그 때를 기다리며 나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정리할 수 있는 끝판왕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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