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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7월6일_욥기22장 | 김덕종 | 2022-07-0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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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욥기22:1-30절 개역개정1.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여 이르되 2. 사람이 어찌 하나님께 유익하게 하겠느냐 지혜로운 자도 자기에게 유익할 따름이니라 3. 네가 의로운들 전능자에게 무슨 기쁨이 있겠으며 네 행위가 온전한들 그에게 무슨 이익이 되겠느냐 4. 하나님이 너를 책망하시며 너를 심문하심이 너의 경건함 때문이냐 5. 네 악이 크지 아니하냐 네 죄악이 끝이 없느니라 6. 까닭 없이 형제를 볼모로 잡으며 헐벗은 자의 의복을 벗기며 7. 목마른 자에게 물을 마시게 하지 아니하며 주린 자에게 음식을 주지 아니하였구나 8. 권세 있는 자는 토지를 얻고 존귀한 자는 거기에서 사는구나 9. 너는 과부를 빈손으로 돌려보내며 고아의 팔을 꺾는구나 10. 그러므로 올무들이 너를 둘러 있고 두려움이 갑자기 너를 엄습하며 11. 어둠이 너로 하여금 보지 못하게 하고 홍수가 너를 덮느니라 12. 하나님은 높은 하늘에 계시지 아니하냐 보라 우두머리 별이 얼마나 높은가 13. 그러나 네 말은 하나님이 무엇을 아시며 흑암 중에서 어찌 심판하실 수 있으랴 14. 빽빽한 구름이 그를 가린즉 그가 보지 못하시고 둥근 하늘을 거니실 뿐이라 하는구나 15. 네가 악인이 밟던 옛적 길을 지키려느냐 16. 그들은 때가 이르기 전에 끊겨 버렸고 그들의 터는 강물로 말미암아 함몰되었느니라 17. 그들이 하나님께 말하기를 우리를 떠나소서 하며 또 말하기를 전능자가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실 수 있으랴 하였으나 18. 하나님이 좋은 것으로 그들의 집에 채우셨느니라 악인의 계획은 나에게서 머니라 19. 의인은 보고 기뻐하고 죄 없는 자는 그들을 비웃기를 20. 우리의 원수가 망하였고 그들의 남은 것을 불이 삼켰느니라 하리라 21.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22. 청하건대 너는 하나님의 입에서 교훈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네 마음에 두라 23. 네가 만일 전능자에게로 돌아가면 네가 지음을 받을 것이며 또 네 장막에서 불의를 멀리 하리라 24. 네 보화를 티끌로 여기고 오빌의 금을 계곡의 돌로 여기라 25. 그리하면 전능자가 네 보화가 되시며 네게 고귀한 은이 되시리니 26. 이에 네가 전능자를 기뻐하여 하나님께로 얼굴을 들 것이라 27. 너는 그에게 기도하겠고 그는 들으실 것이며 너의 서원을 네가 갚으리라 28. 네가 무엇을 결정하면 이루어질 것이요 네 길에 빛이 비치리라 29. 사람들이 너를 낮추거든 너는 교만했노라고 말하라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구원하시리라 30. 죄 없는 자가 아니라도 건지시리니 네 손이 깨끗함으로 말미암아 건지심을 받으리라 그리스의 철학자 제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에게 귀는 두 개가 있고 입은 한 개가 있는 이유는 우리가 말하기는 덜하고 듣기는 더하라는 뜻이다” 욥기의 나오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 이 철학자의 통찰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욥기 22장 부터는 욥과 친구들의 논쟁 3라운드가 시작됩니다. 2라운드 동안 보여주었던 욥의 친구들의 모습은 제노의 통찰력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끔찍한 고통 가운데 있는 욥은 제발 자기 말 좀 들어달라고 외쳤습니다. 하지만 친구들은 욥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자기들의 논리를 가지고 집요하게 욥을 공격합니다. 한 사람도 예외가 없습니다. 이 사람이 한 이야기를 저 사람이 하고, 저 사람이 한 이야기를 또 다른 사람이 합니다. 이런 모습은 3라운드에서도 계속 됩니다. 여전히 욥의 친구들은 욥의 말을 듣지 않고 욥을 공격하기에만 급급합니다. 무한반복 도돌이표와 같았습니다. 3라운드도 엘리바스가 가장 먼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상황과 맥락을 무시하고 보면 22장의 엘리바스의 이야기는 한 편은 좋은 전도설교입니다. 엘리바스는 먼저 하나님의 우월성을 이야기 합니다. “3 네가 의로운들 전능자에게 무슨 기쁨이 있겠으며 네 행위가 온전한들 그에게 무슨 이익이 되겠느냐” 하나님은 의로운 전능자 이십니다. 이런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의로움은 별 유익이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도 그냥 자기에게나 유익할 따름입니다. 그 다음에는 죄에 대한 지적입니다. “5 네 악이 크지 아니하냐 네 죄악이 끝이 없느니라” 막연하게 죄를 말하지 않습니다. 법정의 검사처럼 죄목을 조목조목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죄에 대한 목록이 5절부터 11절까지에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다음에는 이렇게 죄를 짓는 악한 자들의 운명에 대하여 말합니다. “16 그들은 때가 이르기 전에 끊겨 버렸고 그들의 터는 강물로 말미암아 함몰되었느니라” 악한 자들은 하나님의 형벌을 받을 것입니다. 악인들은 아직 때가 아닌데도 잡혀갈 것입니다. 그들의 터전은 강물에 떠내려가고 말 것입니다. 결국 의로운 사람들의 비웃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악인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회개해야 합니다. “21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하나님과 화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회복시켜주십니다. 하나님의 복이 임할 것입니다. 이렇게 엘리바스의 말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돌아가라고 촉구하는 곳에 예수님의 이름만 넣으면 복음을 선포하는 한 편의 설교가 완성이 됩니다. 여기에서 또 반복되는 문제가 나옵니다. 상황과 맥락에 안 맞는 설교입니다. 욥이 죄인이라는 잘못된 전제를 가지고 한 설교입니다. 아무리 설교 내용이 좋더라도 이런 설교는 자기 지식의 자랑일 뿐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가 아닙니다. 여기에 더 심각한 것이 있습니다. 그동안 친구들은 욥이 죄를 졌다는 전제를 가지고 욥을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심판을 받은 악인의 운명을 이야기합니다. 현재 욥의 상황을 보니 이 악인의 형편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욥도 죄를 지은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죄를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22장에서 엘리바스는 대놓고 직접적으로 욥의 죄를 지적합니다. 지금까지 순한 맛으로 욥을 공격했다면 이제 정말 매운 맛으로 저격합니다. “6 까닭 없이 형제를 볼모로 잡으며 헐벗은 자의 의복을 벗기며 7 목마른 자에게 물을 마시게 하지 아니하며 주린 자에게 음식을 주지 아니하였구나 8 권세 있는 자는 토지를 얻고 존귀한 자는 거기에서 사는구나 9 너는 과부를 빈손으로 돌려보내며 고아의 팔을 꺾는구나” 욥은 형제를 볼모를 잡고 헐벗은 자의 의복을 벗겼습니다. 목마르고 배고픈 자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권력을 이용해 다른 사람의 땅을 차지했습니다. 과부와 고아를 역시 돌보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지금 엘리바스가 지적하는 욥의 죄입니다. 아주 구체적으로 욥이 지은 죄를 하나하나 지적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엘리바스의 말은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욥은 이런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31:18 실상은 내가 젊었을 때부터 고아 기르기를 그의 아비처럼 하였으며 내가 어렸을 때부터 과부를 인도하였노라” 오히려 고아를 아비처럼 돌봤습니다. 과부들을 인도했습니다. 지금 엘리바스는 욥이 짓지도 않은 죄를 욥에게 덮어씌우고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마치 본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 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왜 엘리바스는 이런 거짓말을 하고 있나요? 가끔 보면 거짓말을 하는 과학자들이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서 데이터나 증거를 조작합니다. 조작한 데이터로 논문을 제출하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기도 합니다. 예전에 있었던 황우석 사태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지금 엘리바스가 욥을 죄인으로 몰고 가기 위해 일부러 욥의 죄를 조작하고 있는 건가요? 엘리바스는 욥이 죄를 짓지 않은 것을 뻔히 알면서도 죄가 있다고 거짓으로 증언하고 있는 건가요? 그동안 엘리바스의 행동과 말을 볼 때 그렇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엘리바스는 남의 사람의 죄를 조작할 정도로 악한 사람은 분명 아닙니다. 그런데 왜 욥이 짓지도 않은 죄를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나요? 일종의 기억조작입니다. 사람의 기억은 생각보다 정확하지 않고 쉽게 조작되기도 합니다. 이런 실험들도 많습니다. 실험자에게 어떤 가족의 하루 일상에 대한 영상을 보여줍니다. 그 다음 실험자에게 영상에 나오는 개가 크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묻습니다. 실제 영상에는 개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실험자 과반수 이상이 개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을 하고 대답을 합니다. 개에 대한 질문을 받으니까 개가 있었다고 확신을 하고 이 확신이 거짓 기억을 만든 것입니다. 엘리바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욥이 죄인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욥은 현재 죄인이 받는 심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기 확신이 현실을 왜곡하고 거짓 기억을 만들었습니다. 일부러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무섭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잘못된 자기 확신이 한 사람을 천인공노할 죄인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엘리바스는 악한 사람이 아닙니다. 친구를 위로하러 먼 길을 왔던 사람입니다. 진심으로 친구를 위하여 조언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엘리바스도 잘못된 자기 확신에 빠질 때 없는 죄도 만들어내는 거짓 증인이 되고 맙니다. 어떤 분야에 책 한 권만 읽은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말이 있습니다. 겨우 책 한 권 읽고 다 아는 척 하는 것을 비꼬는 말입니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인양 해서는 안됩니다. 내가 틀릴 수 있는 것을 항상 알고 조심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이렇게 겸손해야 엘리바스와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수 엽기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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