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9월13일_시편130편 | 운영자 | 2023-09-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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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시편130:1-8절 개역개정1.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2.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3.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4.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5.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6.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7.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 8. 그가 이스라엘을 그의 모든 죄악에서 속량하시리로다 인생을 살다 보면 어려운 일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이런 어려움과 고난이 꼭 죄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욥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평가였습니다. 욥이 힘든 고난을 당한 것은 욥의 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고난은 죄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 죄에서 돌이키기를 원하시기에 하나님이 심판하시기도 합니다. 시편 130편에서 시인은 깊은 절망 가운데 있습니다. 도저히 자신 스스로는 헤어 나올 수 없는 어려움입니다. 시인인 이런 어려움에 처한 것은 죄의 결과였습니다. “3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어떤 잘못인지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습니다. 시인은 죄를 지었고 그 결과 깊은 수렁 가운데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시인은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이 부르짖음은 아주 간절합니다. 2절에 보면 자신의 소리를 들어달라고, 귀를 기울려달라고 반복해서 외치고 있습니다. 시인은 이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용서를 확신하게 됩니다. “4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시인은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심을 고백합니다. 세상의 어떤 절대 권력을 가진 사람도 죄를 용서해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엄청난 능력과 학식을 가진 사람도 죄를 용서해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가능합니다. 이제 시인은 하나님의 죄 용서를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죄 용서를 확신하는 시인은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시편를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고백하는 여러 번 나옵니다. 그런데 130편에서 시인이 기다리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죄가 용서받았다는 선포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죄를 용서해주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확실하게 말씀하실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렇게 하나님이 죄 용서를 선포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무엘하 12장에 보면 나단이 우리아의 아내를 취한 다윗을 강하게 책망합니다. 다윗은 이 책망을 듣고 자신의 죄를 고백합니다. 나단은 이 죄의 고백을 듣고 하나님에서 죄를 용서하셨다고 선포합니다. “삼하12: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이사야서 40장에는 개인이 아니라 이스라엘 공동체를 향한 죄 용서의 선포가 있습니다. “사40: 1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2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백성들을 위로하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맏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노역은 끝났고 그 죄악은 용서를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시인은 지금 이런 하나님의 용서의 말씀을 듣고 싶어합니다. 그 간절함은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용서를 구한 시인은 개인의 경험을 넘어 공동체를 바라봅니다.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속량하심을 보라고 합니다. 자신의 죄를 용서하셨듯이 이스라엘의 모든 죄도 속량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시인의 이런 기대는 궁극적으로 예수님을 통해 성취가 됩니다. 마태복음 9장에 보면 사람들이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옵니다. 예수님은 그 병자에게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을 들은 서기관들이 예수님이 신성을 모독했다고 합니다.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이신데 죄 용서한다는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 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6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예수님이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죄의 용서를 받습니다. 아무리 큰 죄라도 예수님의 십자가가 감당 못할 죄는 없습니다. 살면서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죄를 짓기도 합니다. 이럴 때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다시 한 번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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