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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8월22일_욥기36장 | 김덕종 | 2022-08-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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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욥기36:1-33절 개역개정1. 엘리후가 말을 이어 이르되 2. 나를 잠깐 용납하라 내가 그대에게 보이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아직도 할 말이 있음이라 3. 내가 먼 데서 지식을 얻고 나를 지으신 이에게 의를 돌려보내리라 4. 진실로 내 말은 거짓이 아니라 온전한 지식을 가진 이가 그대와 함께 있느니라 5. 하나님은 능하시나 아무도 멸시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사 6. 악인을 살려두지 아니하시며 고난 받는 자에게 공의를 베푸시며 7. 그의 눈을 의인에게서 떼지 아니하시고 그를 왕들과 함께 왕좌에 앉히사 영원토록 존귀하게 하시며 8. 혹시 그들이 족쇄에 매이거나 환난의 줄에 얽혔으면 9. 그들의 소행과 악행과 자신들의 교만한 행위를 알게 하시고 10. 그들의 귀를 열어 교훈을 듣게 하시며 명하여 죄악에서 돌이키게 하시나니 11. 만일 그들이 순종하여 섬기면 형통한 날을 보내며 즐거운 해를 지낼 것이요 12. 만일 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면 칼에 망하며 지식 없이 죽을 것이니라 13. 마음이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은 분노를 쌓으며 하나님이 속박할지라도 도움을 구하지 아니하나니 14. 그들의 몸은 젊어서 죽으며 그들의 생명은 남창과 함께 있도다 15. 하나님은 곤고한 자를 그 곤고에서 구원하시며 학대 당할 즈음에 그의 귀를 여시나니 16.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대를 환난에서 이끌어 내사 좁지 않고 넉넉한 곳으로 옮기려 하셨은즉 무릇 그대의 상에는 기름진 것이 놓이리라 17. 이제는 악인의 받을 벌이 그대에게 가득하였고 심판과 정의가 그대를 잡았나니 18. 그대는 분노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많은 뇌물이 그대를 그릇된 길로 가게 할까 조심하라 19. 그대의 부르짖음이나 그대의 능력이 어찌 능히 그대가 곤고한 가운데에서 그대를 유익하게 하겠느냐 20. 그대는 밤을 사모하지 말라 인생들이 밤에 그들이 있는 곳에서 끌려 가리라 21. 삼가 악으로 치우치지 말라 그대가 환난보다 이것을 택하였느니라 22. 하나님은 그의 권능으로 높이 계시나니 누가 그같이 교훈을 베풀겠느냐 23. 누가 그를 위하여 그의 길을 정하였느냐 누가 말하기를 주께서 불의를 행하셨나이다 할 수 있으랴 24. 그대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고 높이라 잊지 말지니라 인생이 그의 일을 찬송하였느니라 25. 그의 일을 모든 사람이 우러러보나니 먼 데서도 보느니라 26. 하나님은 높으시니 우리가 그를 알 수 없고 그의 햇수를 헤아릴 수 없느니라 27. 그가 물방울을 가늘게 하시며 빗방울이 증발하여 안개가 되게 하시도다 28. 그것이 구름에서 내려 많은 사람에게 쏟아지느니라 29. 겹겹이 쌓인 구름과 그의 장막의 우렛소리를 누가 능히 깨달으랴 30. 보라 그가 번갯불을 자기의 사면에 펼치시며 바다 밑까지 비치시고 31. 이런 것들로 만민을 심판하시며 음식을 풍성하게 주시느니라 32. 그가 번갯불을 손바닥 안에 넣으시고 그가 번갯불을 명령하사 과녁을 치시도다 33. 그의 우레가 다가오는 풍우를 알려 주니 가축들도 그 다가옴을 아느니라 요즈음 티브이 예능을 보면 누구 누구 라인이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규라인이다, 강라인이다, 유라인이다는 식입니다. 세상은 라인을 타는 것, 줄을 잘 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연예계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직장은 더 치열합니다. 대통령 선거 때가 되면 정치판은 줄을 잘 서기 위해 사생결단으로 달려듭니다. 내가 선택한 편이 권력을 잡아야 내 다음이 보장될 수 있습니다. 세상은 내가 누구의 편에 서느냐가 아주 중요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누구 편에 서는 것이 제일 좋을까요? 성도들은 아주 쉽게 대답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편입니다. 이 땅을 창조하신, 만왕의 왕이신, 전능하신 하나님 편에 서야 합니다. 세상의 어떤 권력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동안 욥의 친구들은 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자신들이 하나님 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에게 대들고 있는 욥을 공격했습니다. 엘리후도 비슷합니다. “2 나를 잠깐 용납하라 내가 그대에게 보이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아직도 할 말이 있음이라” 엘리후가 욥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엘리후는 자신이 하나님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하나님 편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 편에 서서 이야기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다만 문제는 서로 의견이 다를 때 자신이 하나님 편에 선다고 하면 상대편은 하나님 편이 아니게 됩니다. 이분법적인 사고는 나쁘지만 영적인 세계는 둘로 나누어 집니다. 하나님 편이냐, 사탄의 편이냐. 내가 하나님 편이면 나와 다른 상대방은 사탄의 편입니다.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은 지금 사탄을 대신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교회에서 회의를 할 때도 이와 비슷한 경우를 보게 됩니다.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면서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말은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면 하나님의 뜻에 반대하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대변하는 자신은 옳고 다른 사람은 다 틀렸다는 말입니다. 이러면 더 이상 회의나 토론이 진행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 편에 서야 하는 것은 맞지만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조심해서 말해야 합니다. 자신의 말만 맞다는 교만한 표현일 수 있습니다. 엘리후가 하나님 편에 있다고 욥이 하나님과 반대편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엘리후는 계속해서 고난의 유익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잠시 이야기 했던 것을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몸이 고통을 느끼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고통을 느끼지 못하면 심각한 병입니다. 수영을 하다가 버려진 유리에 발을 베었습니다. 만약 유리에 베어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면 다친 것도 모르고 계속 수영을 합니다. 피는 상처를 통해 계속 흐르고 상처 부위는 감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베었을 때 고통을 느껴야 자신이 다친 것을 알고 빨리 치료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닥치는 고난도 마찬가지입니다. “8 혹시 그들이 족쇄에 매이거나 환난의 줄에 얽혔으면 9 그들의 소행과 악행과 자신들의 교만한 행위를 알게 하시고 10 그들의 귀를 열어 교훈을 듣게 하시며 명하여 죄악에서 돌이키게 하시나니” 인생을 살다가 족쇄에 매이거나 환난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고난을 통해서 그 사람의 신앙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리십니다. 자신의 교만한 행위를 알게 하시고 잘못을 깨닫게 하십니다. 고난은 닫았던 귀를 열어 하나님의 경고를 듣게 하고 죄악에서 돌이킬 수 있도록 합니다. 그러기에 고난은 오히려 하나님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새번역 15 그러나 사람이 받는 고통은, 하나님이 사람을 가르치시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고통을 받을 때에 하나님은 그 사람의 귀를 열어서 경고를 듣게 하십니다” 죄에 대한 형벌로서 고난이 닥치기도 합니다. 이 고난도 죄에서 돌이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반면 경건하게 살아도 고난이 닥칠 때가 있습니다. “딤후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악합니다. 이런 악한 세상에서 경건하게 살 때 고난이 닥치기도 합니다. 이 고난도 악한 세상에서 신앙을 더욱 성장시키기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이 사실을 알기에 때로 우리에게 이유 없는 고난이 닥칠 때 인내하면서 견딜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내에는 모델이 있습니다. 예수님이십니다.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님이 모진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고난을 통해 오히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하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바라볼 때 고난 중에도 우리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히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예수님의 우리의 연약함을 누구보다 잘 아십니다. “히2: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우리와 같이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이 이제 우리를 도우실 수 있습니다. 때로 우리의 죄 때문에 고난이 닥칠 수 있습니다. 죄가 없이 경건하게 살고자 할 때도 고난이 닥칠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라도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분명합니다. 인내하고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고난을 넘어 하나님께 우리의 시선을 돌리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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