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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7월29일_욥기30장 | 운영자 | 2022-07-2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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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욥기30:1-31절 개역개정1. 그러나 이제는 나보다 젊은 자들이 나를 비웃는구나 그들의 아비들은 내가 보기에 내 양 떼를 지키는 개 중에도 둘 만하지 못한 자들이니라 2. 그들의 기력이 쇠잔하였으니 그들의 손의 힘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3. 그들은 곧 궁핍과 기근으로 인하여 파리하며 캄캄하고 메마른 땅에서 마른 흙을 씹으며 4. 떨기나무 가운데에서 짠 나물을 꺾으며 대싸리 뿌리로 먹을 거리를 삼느니라 5. 무리가 그들에게 소리를 지름으로 도둑 같이 사람들 가운데에서 쫓겨나서 6. 침침한 골짜기와 흙 구덩이와 바위 굴에서 살며 7. 떨기나무 가운데에서 부르짖으며 가시나무 아래에 모여 있느니라 8. 그들은 본래 미련한 자의 자식이요 이름 없는 자들의 자식으로서 고토에서 쫓겨난 자들이니라 9. 이제는 그들이 나를 노래로 조롱하며 내가 그들의 놀림거리가 되었으며 10. 그들이 나를 미워하여 멀리 하고 서슴지 않고 내 얼굴에 침을 뱉는도다 11. 이는 하나님이 내 활시위를 늘어지게 하시고 나를 곤고하게 하심으로 무리가 내 앞에서 굴레를 벗었음이니라 12. 그들이 내 오른쪽에서 일어나 내 발에 덫을 놓으며 나를 대적하여 길을 에워싸며 13. 그들이 내 길을 헐고 내 재앙을 재촉하는데도 도울 자가 없구나 14. 그들은 성을 파괴하고 그 파괴한 가운데로 몰려드는 것 같이 내게로 달려드니 15. 순식간에 공포가 나를 에워싸고 그들이 내 품위를 바람 같이 날려 버리니 나의 구원은 구름 같이 지나가 버렸구나 16. 이제는 내 생명이 내 속에서 녹으니 환난 날이 나를 사로잡음이라 17. 밤이 되면 내 뼈가 쑤시니 나의 아픔이 쉬지 아니하는구나 18. 그가 큰 능력으로 나의 옷을 떨쳐 버리시며 나의 옷깃처럼 나를 휘어잡으시는구나 19. 하나님이 나를 진흙 가운데 던지셨고 나를 티끌과 재 같게 하셨구나 20. 내가 주께 부르짖으나 주께서 대답하지 아니하시오며 내가 섰사오나 주께서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다 21. 주께서 돌이켜 내게 잔혹하게 하시고 힘 있는 손으로 나를 대적하시나이다 22. 나를 바람 위에 들어 불려가게 하시며 무서운 힘으로 나를 던져 버리시나이다 23. 내가 아나이다 주께서 나를 죽게 하사 모든 생물을 위하여 정한 집으로 돌려보내시리이다 24. 그러나 사람이 넘어질 때에 어찌 손을 펴지 아니하며 재앙을 당할 때에 어찌 도움을 부르짖지 아니하리이까 25. 고생의 날을 보내는 자를 위하여 내가 울지 아니하였는가 빈궁한 자를 위하여 내 마음에 근심하지 아니하였는가 26. 내가 복을 바랐더니 화가 왔고 광명을 기다렸더니 흑암이 왔구나 27. 내 마음이 들끓어 고요함이 없구나 환난 날이 내게 임하였구나 28. 나는 햇볕에 쬐지 않고도 검어진 피부를 가지고 걸으며 회중 가운데 서서 도움을 부르짖고 있느니라 29. 나는 이리의 형제요 타조의 벗이로구나 30. 나를 덮고 있는 피부는 검어졌고 내 뼈는 열기로 말미암아 탔구나 31. 내 수금은 통곡이 되었고 내 피리는 애곡이 되었구나 예전 예능 프로그램 중에 극과 극을 체험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팀을 둘로 나눕니다. 예를 들어 어떤 지역에 숙소를 가게 되면 한 팀은 최고급 숙소에서 묵고 한 팀은 아주 저렴한 게스트 하우스에 묵습니다. 식사를 해도 한 팀은 고급스러운 식당에서 비싼 음식을 먹고 다른 한 팀은 시장에서 밥을 먹는 식입니다. 시청자들은 티브이를 보면서 극과 극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체험합니다. 욥기 29장과 30장에 나오는 욥을 보면 마치 이렇게 극과 극의 체험을 하는 것 같이 보입니다. 29장에 보면 ‘그 때에는’라는 단어가 반복됩니다. 3,4,5,7절입니다. 30장에서는 ‘이제는’이 반복됩니다. 1,9,16절입니다. 29장에 나오는 그 때는 욥이 행복했던 과거입니다. 30장에 나오는 이제는 욥이 불행한 현재입니다.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아주 극과 극으로 대조되어서 나오고 있습니다. 과거 욥은 사람들에 존경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욥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욥의 판단을 존중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1 그러나 이제는 나보다 젊은 자들이 나를 비웃는구나 그들의 아비들은 내가 보기에 내 양 떼를 지키는 개 중에도 둘 만하지 못한 자들이니라” 욥보다 젊은 사람들마저 욥을 비웃고 있습니다. “9 이제는 그들이 나를 노래로 조롱하며 내가 그들의 놀림거리가 되었으며 10 그들이 나를 미워하여 멀리 하고 서슴지 않고 내 얼굴에 침을 뱉는도다” 그냥 비웃는 것을 넘어 욥을 조롱하는 노래를 부릅니다. 사람들이 욥을 멀리하고 마주치기라도 하면 얼굴에 침을 뱉습니다. 사람들에게 극과 극의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욥이 행복했던 것은 단순히 돈 많은 부자여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등불이 욥의 머리를 비추었습니다. 하나님이 욥의 장막에 기름을 바르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20 내가 주께 부르짖으나 주께서 대답하지 아니하시오며 내가 섰사오나 주께서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다 21 주께서 돌이켜 내게 잔혹하게 하시고 힘 있는 손으로 나를 대적하시나이다” 욥과 함께 했던 하나님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욥이 부르짖어도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욥을 잔혹하게 대하시고 대적하고 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하나님의 관계도 다 무너져 버린 비참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욥은 자신의 처지를 이렇게 비관합니다. “29 나는 이리의 형제요 타조의 벗이로구나” 사람들 사이에 살지 못하는 광야의 들짐승과 같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런 욥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나는 분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입니다. 많은 학자들이 욥이 예수님을 예표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죄 없이 고난을 당하는 욥의 모습이 죄 없이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신 예수님을 모습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30장은 더욱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욥이 극과 극의 체험을 했듯이 예수님도 극과 극을 경험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성부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십니다. 이 땅을 창조하시고 이 땅을 통치하시는 만왕의 왕입니다. 이 창조자 하나님이 피조물인 사람이 되셨습니다. 이것만 해도 극과 극입니다. 그런데 그냥 사람도 아닙니다. 가장 극악한 죄인의 신분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 과정에서 예수님은 사람들과 하나님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이 입성할 때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외쳤습니다. “요12: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이렇게 외쳤던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칩니다. 이 소동 중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 도망을 칩니다. 수제자라고 불리던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이렇게 외치십니다. “마27: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예수님은 하나님이 자신을 버리셨다고 외치셨습니다. 제가 성경공부를 할 때 이 장면이 나오면 꼭 이 질문을 합니다. “이 때 하나님은 예수님을 정말로 버리셨을까요? 이렇게 질문을 하면 대부분의 성도들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버리지 않았다고 대답합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버리셨다는 것이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제가 다시 묻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예수님을 버린 척 하시고, 예수님은 버림받은 척 하시는 건가요?” 이렇게 질문하면 잘 대답을 못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달리셨습니다. 죄인의 신분입니다. 성경은 나무에 달린 자마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나무에 달려 죄인으로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에게도 버림받으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 버림을 받은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사람들은 죄가 없이 고난 받는 욥의 모습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이것은 정당한 일이 아니며 하나님이 잘못한 것이라고들 말합니다. 그런데 죄 없으신 예수님은 욥이 겪은 것보다 더한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예수님이 겪으신 억울한 고난은 우리를 위한 구원의 방법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선한 일을 하셨습니다. 욥이 당하는 고난을 당장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닥치는 고통들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여전히 하나님을 붙들 수 있는 것은 예수님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하나뿐인 아들을 이 땅에 보내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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