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3장_희망을 주는 사람 | 김덕종 | 2025-08-2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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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룻기3:1-18절 개역개정1.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2. 네가 함께 하던 하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보라 그가 오늘 밤에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3.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 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 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4.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가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네 할 일을 네게 알게 하리라 하니 5. 룻이 시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니라 6. 그가 타작 마당으로 내려가서 시어머니의 명령대로 다 하니라 7. 보아스가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워 가서 곡식 단 더미의 끝에 눕는지라 룻이 가만히 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웠더라 8. 밤중에 그가 놀라 몸을 돌이켜 본즉 한 여인이 자기 발치에 누워 있는지라 9. 이르되 네가 누구냐 하니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하니 10. 그가 이르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가난하건 부하건 젊은 자를 따르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11. 그리고 이제 내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12. 참으로 나는 기업을 무를 자이나 기업 무를 자로서 나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 있으니 13. 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 아침에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 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할 것이니라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리라 아침까지 누워 있을지니라 하는지라 14. 룻이 새벽까지 그의 발치에 누웠다가 사람이 서로 알아보기 어려울 때에 일어났으니 보아스가 말하기를 여인이 타작 마당에 들어온 것을 사람이 알지 못하여야 할 것이라 하였음이라 15. 보아스가 이르되 네 겉옷을 가져다가 그것을 펴서 잡으라 하매 그것을 펴서 잡으니 보리를 여섯 번 되어 룻에게 지워 주고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16. 룻이 시어머니에게 가니 그가 이르되 내 딸아 어떻게 되었느냐 하니 룻이 그 사람이 자기에게 행한 것을 다 알리고 17. 이르되 그가 내게 이 보리를 여섯 번 되어 주며 이르기를 빈 손으로 네 시어머니에게 가지 말라 하더이다 하니라 18. 이에 시어머니가 이르되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될지 알기까지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룻기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책 제목이 룻기이니 룻이라고 쉽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은 룻이 맞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룻기를 잘 살펴보면 룻기는 룻의 관점이 아니라 나오미의 관점으로 진행이 됩니다. 룻기 1장에는 나오미의 불행이 연속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흉년으로 고향을 떠났습니다. 남편이 죽었습니다. 열심히 키워 결혼시킨 두 아들마저 죽습니다.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는 텅 비워 있는 상태입니다. 온통 절망뿐입니다. 이랬던 나오미가 룻기 마지막에 가면 바뀝니다. 이웃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고 합니다. 사실 이 아이는 나오미가 낳은 아들이 아닙니다. 룻이 낳은 아들입니다. 나오미가 아들을 낳았다는 말을 통해 1장에서 아무것도 없이 텅 비었던 나오미가 이제 온전히 채워졌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룻기는 1장의 텅 비웠던 나오미가 4장에서 채워지는 이야기입니다. 이 채워지게 하는 핵심 단어가 있었습니다. “10 그가 이르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가난하건 부하건 젊은 자를 따르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여기에 나오는 인애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로 헤세드입니다. 인애, 은혜라는 끗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은혜를 보이셨습니다. “1:6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기근으로 고통 받는 자신의 백성들을 찾아오셔서 양식을 주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나오미에게까지 흘러가나요? 이 은혜의 통로가 바로 룻이었습니다.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충성했습니다. 자신의 고향을 버리고 시어머니를 따라나섰습니다. 창피함을 무릅쓰고 남의 밭에서 떨어진 곡식을 주었습니다. 이 충성이 나오미에게 희망의 빛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제는 나오미가 희망을 이야기하게 만들었습니다. 룻은 나오미에게 희망을 심어준 사람입니다.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 누구나 꿈꾸는 멋진 모습입니다. 학생들에게 희망을 주는 선생님, 직원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장님, 가족들에게 희망을 주는 아버지,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의사, 이 나라에 희망을 주는 정치가. 교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목회자. 어떻게 가능합니까? 말로 되지 않습니다. 오늘날은 그야말로 말 전성시대입니다. 말 잘하는 사람이 대접받고 있습니다. 정치가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우리나라가 유토피아가 되지 않는 것이 이상합니다. 굳이 죽어서 천국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 조금만 참으면 바로 이 나라에 천국이 건설될 것 같이 이야기 합니다. 룻기는 충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충성은 자기 스스로 손해 보면서 다른 사람을 섬기는 마음입니다. 이러한 헌신이 절망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줍니다. 자신의 돈을,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내줄 수 있는 사람이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주변의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좀 불편하더라고, 내가 좀 손해 보더라도 다른 사람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동인교회가 희망을 주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좀 힘들고 불편해도 교회 주변의 사람들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희망을 주는 성도, 희망을 주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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