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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6월29일_욥기19장 | 운영자 | 2022-06-2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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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욥기19:1-29절 개역개정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2. 너희가 내 마음을 괴롭히며 말로 나를 짓부수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3. 너희가 열 번이나 나를 학대하고도 부끄러워 아니하는구나 4. 비록 내게 허물이 있다 할지라도 그 허물이 내게만 있느냐 5. 너희가 참으로 나를 향하여 자만하며 내게 수치스러운 행위가 있다고 증언하려면 하려니와 6. 하나님이 나를 억울하게 하시고 자기 그물로 나를 에워싸신 줄을 알아야 할지니라 7. 내가 폭행을 당한다고 부르짖으나 응답이 없고 도움을 간구하였으나 정의가 없구나 8. 그가 내 길을 막아 지나가지 못하게 하시고 내 앞길에 어둠을 두셨으며 9. 나의 영광을 거두어가시며 나의 관모를 머리에서 벗기시고 10. 사면으로 나를 헐으시니 나는 죽었구나 내 희망을 나무 뽑듯 뽑으시고 11. 나를 향하여 진노하시고 원수 같이 보시는구나 12. 그 군대가 일제히 나아와서 길을 돋우고 나를 치며 내 장막을 둘러 진을 쳤구나 13. 나의 형제들이 나를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내게 낯선 사람이 되었구나 14. 내 친척은 나를 버렸으며 가까운 친지들은 나를 잊었구나 15. 내 집에 머물러 사는 자와 내 여종들은 나를 낯선 사람으로 여기니 내가 그들 앞에서 타국 사람이 되었구나 16. 내가 내 종을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하니 내 입으로 그에게 간청하여야 하겠구나 17. 내 아내도 내 숨결을 싫어하며 내 허리의 자식들도 나를 가련하게 여기는구나 18. 어린 아이들까지도 나를 업신여기고 내가 일어나면 나를 조롱하는구나 19. 나의 가까운 친구들이 나를 미워하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돌이켜 나의 원수가 되었구나 20. 내 피부와 살이 뼈에 붙었고 남은 것은 겨우 잇몸 뿐이로구나 21. 나의 친구야 너희는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구나 22.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처럼 나를 박해하느냐 내 살로도 부족하냐 23. 나의 말이 곧 기록되었으면, 책에 씌어졌으면, 24. 철필과 납으로 영원히 돌에 새겨졌으면 좋겠노라 25.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26.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27. 내가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내 마음이 초조하구나 28. 너희가 만일 이르기를 우리가 그를 어떻게 칠까 하며 또 이르기를 일의 뿌리가 그에게 있다 할진대 29. 너희는 칼을 두려워 할지니라 분노는 칼의 형벌을 부르나니 너희가 심판장이 있는 줄을 알게 되리라 우리나라 헌법 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차별 받지 않고 특권도 없다고 명시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법에 호소합니다. 특히 사회적으로 아무런 힘이 없는 약한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호소할 곳은 법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욥은 법에도 호소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7 내가 폭행을 당한다고 부르짖으나 응답이 없고 도움을 간구하였으나 정의가 없구나” 여기서 부르짖다는 말은 법정 용어입니다. 욥은 폭행을 당했다고 부르짖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응답도 없습니다. 아무리 법에 도움을 청해도 정의가 없습니다. 왜 그런가요? “6 하나님이 나를 억울하게 하시고 자기 그물로 나를 에워싸신 줄을 알아야 할지니라” 욥은 자신을 이렇게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그물로 욥을 에워쌌습니다. 궁지로 몰아 넣으셨습니다. 욥이 가는 길에 담을 치고 막으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가지고 법에 호소할 수 없습니다.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내가 곧 국가다’라고 말하면서 절대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법은 왕의 발밑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왕과 비교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곧 법이십니다. 이러니 하나님이 하신 일을 가지고 법에 호소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욥에 대한 하나님의 공격은 무섭습니다. 하나님은 욥의 관을 벗기셨습니다. 욥을 원수같이 여기시며 욥을 공격하기 위해 군대를 보내셨습니다. 욥의 모든 희망은 나무가 뽑히듯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욥은 하나님으로부터 철저하게 분리된 소외의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또 있습니다. 사람들로 부터의 소외입니다. “14 내 친척은 나를 버렸으며 가까운 친지들은 나를 잊었구나” 친척들, 가까운 친구들, 종들, 친형제들이 나 욥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19 나의 가까운 친구들이 나를 미워하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돌이켜 나의 원수가 되었구나” 욥은 친구들에게 자신을 불쌍하게 여겨달라고 부탁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친구들은 욥을 학대하고 하나님이라고 된 듯이 욥을 핍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고통에 더해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도 버림을 받았다는 아픔과 절망이 욥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지금 욥이 고백하는 소외의 고통은 본래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던 운명이었습니다. 에베소서 2장에 보면 비슷하게 반복되는 말이 있습니다. 그 때에, 전에는 입니다. 그 때에 우리는 사탄의 종이었습니다. 전에는 우리도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던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관계가 깨지고 하나님과 분리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또 있습니다. 그 때에는 이방인이었습니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들이어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도 외인이었습니다. 언약의 자손들에게 소외받는 아무런 소망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것이 아담의 범죄 이후 모든 사람이 처해진 운명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고, 언약의 백성들에게도 외면당하던 우리들이 어떻게 새로운 소망을 가질 수 있었나요? 욥은 하나님과 분리되고 사람들에게 외면 받는 이 현실 앞에서 한 가지 강력한 소망을 이야기 합니다. “25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26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욥은 자신을 구원해줄 대속자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대속자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고엘’입니다. 구약성경에서 고엘은 당시 사회에서 자신과 가족을 지킬 수 있는 일종의 안전장치였습니다. 대개 친족이 이 고엘를 담당했습니다.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자신의 편을 서 줍니다. 살해를 당하게 되면 대속자는 대신 살인자에게 벌을 주었습니다. 자식이 없이 죽으면 미망인과의 결혼을 통해 자식을 낳아 기업을 잇게 했습니다. 룻기에 보면 보아스가 이 고엘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욥이 자신을 구원해달라고 요청하는 고엘, 대속자는 누구인가요? 욥은 자신을 치는 것이 하나님의 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1하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구나” 이 하나님의 공격에서 누가 욥을 보호할 수 있나요? 지금도 살아계시고 장차 이 땅 위에 우뚝 설 수 있는 분은 누구신가요? 사람 중에 하나님의 공격을 막을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할 수 있습니다. 욥은 자신의 구원자로 하나님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좀 이상한 상황입니다 하나님이 욥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욥은 그 하나님에게 자신을 공격으로부터 보호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상황 역시 우리는 이미 경험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나요?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 아래 있던 우리가, 모든 약속들 밖에 있던 우리가 어떻게 다시 회복이 되었나요? “엡2: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예수님의 피로 회복이 되었습니다. 이런 그림입니다. 하늘에서 법정이 열립니다. 재판장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공격하는 검사는 사탄입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의 죄를 열거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촉구합니다. 죄인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법정에 우리의 대속자, 구원자, 변호사가 있습니다.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이 변호사는 좀 이상합니다. 변호사는 피고의 죄가 없다고 주장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다 인정하십니다. 우리가 본래 영원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것이 맞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있습니다. 우리가 죄인이 맞지만 그 죄에 대한 벌을 변호사이신 예수님 대신 받으셨다고 주장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우리의 죄의 벌을 예수님이 대신 받으셨기에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책임이 없습니다. 죄인이 의인이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한 형벌을 대신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은 다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사람으로 오셔서 우리의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에 대한 심판자이시면서 동시에 구원자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때 이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만 믿으면 됩니다. 욥이 하나님에게 자신의 대속자가 되어달라고 호소했을 때 삼위일체 교리나 구속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없었을 것입니다. 다만 오직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외에는 자신을 이 고난에서 구원할 수 있는 다른 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고엘을 외쳤던 욥은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구원의 비밀에 한 걸음 깊이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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