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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6월27일_욥기18장 | 운영자 | 2022-06-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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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욥기18:1-21절 개역개정1.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여 이르되 2. 너희가 어느 때에 가서 말의 끝을 맺겠느냐 깨달으라 그 후에야 우리가 말하리라 3. 어찌하여 우리를 짐승으로 여기며 부정하게 보느냐 4. 울분을 터뜨리며 자기 자신을 찢는 사람아 너 때문에 땅이 버림을 받겠느냐 바위가 그 자리에서 옮겨지겠느냐 5. 악인의 빛은 꺼지고 그의 불꽃은 빛나지 않을 것이요 6. 그의 장막 안의 빛은 어두워지고 그 위의 등불은 꺼질 것이요 7. 그의 활기찬 걸음이 피곤하여지고 그가 마련한 꾀에 스스로 빠질 것이니 8. 이는 그의 발이 그물에 빠지고 올가미에 걸려들며 9. 그의 발 뒤꿈치는 덫에 치이고 그의 몸은 올무에 얽힐 것이며 10. 그를 잡을 덫이 땅에 숨겨져 있고 그를 빠뜨릴 함정이 길목에 있으며 11. 무서운 것이 사방에서 그를 놀라게 하고 그 뒤를 쫓아갈 것이며 12. 그의 힘은 기근으로 말미암아 쇠하고 그 곁에는 재앙이 기다릴 것이며 13. 질병이 그의 피부를 삼키리니 곧 사망의 장자가 그의 지체를 먹을 것이며 14. 그가 의지하던 것들이 장막에서 뽑히며 그는 공포의 왕에게로 잡혀가고 15. 그에게 속하지 않은 자가 그의 장막에 거하리니 유황이 그의 처소에 뿌려질 것이며 16. 밑으로 그의 뿌리가 마르고 위로는 그의 가지가 시들 것이며 17. 그를 기념함이 땅에서 사라지고 거리에서는 그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을 것이며 18. 그는 광명으로부터 흑암으로 쫓겨 들어가며 세상에서 쫓겨날 것이며 19. 그는 그의 백성 가운데 후손도 없고 후예도 없을 것이며 그가 거하던 곳에는 남은 자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 20. 그의 운명에 서쪽에서 오는 자와 동쪽에서 오는 자가 깜짝 놀라리라 21. 참으로 불의한 자의 집이 이러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의 처소도 이러하니라 저주 설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주 설교라고 하면 좀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듭니다. 성도들을 보면 다들 힘들고 어려운 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성도들에게 주일날만이라도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가 필요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신명기 28장을 들 수 있습니다. 신명기 28장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의 축복과 불순종 때 임하는 저주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축복에 대한 말씀은 1절부터 14절까지입니다. 반면 저주에 대한 말씀은 15절부터 68절까지입니다. 축복의 말씀보다 저주의 말씀이 4배가 더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도 가르쳐야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도 가르쳐야 합니다. 성경이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욥기 18장은 욥의 친구 빌닷의 발언입니다. 이 빌닷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신명기 28장의 저주의 말씀을 잘 정리한 설교와 같이 느껴집니다. 빌닷은 하나님을 떠난 악인이 당하는 심판과 저주를 아주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7 그의 활기찬 걸음이 피곤하여지고 그가 마련한 꾀에 스스로 빠질 것이니” 악인은 당장에는 잘 나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자기 꾀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맙니다. 올가미와 덫과 함정이 악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13 질병이 그의 피부를 삼키리니 곧 사망의 장자가 그의 지체를 먹을 것이며” 악인을 기다리는 것은 올무뿐이 아닙니다. 질명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질병으로 그의 피부는 성한 곳이 없이 썩어갈 것입니다. 죽을병에 걸려 고통당할게 될 것입니다. “15 그에게 속하지 않은 자가 그의 장막에 거하리니 유황이 그의 처소에 뿌려질 것이며” 저주는 악인 한 사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악인이 거하던 곳에도 유황이 뿌려져 아무도 살 수가 없는 곳이 될 것입니다. “19 그는 그의 백성 가운데 후손도 없고 후예도 없을 것이며 그가 거하던 곳에는 남은 자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 악인은 죽어도 그 저주가 끝이 아닙니다. 후손도 백성도 없이 영원히 잊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불의한 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악인이 받는 저주입니다. 저주에 대한 빌닷의 이야기는 성경적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이 당할 운명에 대해서 아주 매섭게 설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빌닷의 설교는 잘못된 설교입니다. 설교 내용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잘못 적용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빌닷은 일반적인 저주 설교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한 대상이 있습니다. “3 어찌하여 우리를 짐승으로 여기며 부정하게 보느냐 4 울분을 터뜨리며 자기 자신을 찢는 사람아 너 때문에 땅이 버림을 받겠느냐 바위가 그 자리에서 옮겨지겠느냐” 빌닷은 욥이 친구들 짐승처럼 여긴다고 말합니다. 화가 치밀어서 자신을 갈기갈기 찢는 자와 사람이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빌닷이 이야기하는 악인은 바로 욥입니다. 지금 빌닷은 욥을 악인이라고 단정하고 저주를 퍼붓고 있습니다. 고통 받는 친구를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저주를 가지고 협박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에서 일부 저주 설교가 문제가 된 적이 많았습니다. 목회자의 잘못으로 교회가 어려움에 빠집니다. 그러면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바로 잡아야 합니다. 하지만 일부 목사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설교 시간에 하나님의 종을 대적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설교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들을 협박하는데 사용했습니다. 욥은 빌닷이 단정하는 악인이 아닙니다. “1:1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저주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사용되면 죄에 대한 좋은 경고가 됩니다. 하지만 잘못 사용되면 고난 중에 있는 사람을 더 힘들게 만드는 협박이 되고 맙니다. 지금 빌닷은 경고가 아니라 협박을 하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저주에 대한 빌닷의 이야기를 보면서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실제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빌닷의 말과 같이 자신의 죄 때문에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갈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도 율법의 저주를 받았습니다. 사도신경에 보면 예수님이 당하신 저주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된지’ 전능하신 하나님이 유한한 인간이 되셨습니다. 사람들에게 고난을 받았습니다. 제자에게 배신을 당하고,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했습니다. 참을 수 없는 육체적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러다 가장 악랄한 죄인이 받는 십자가의 형벌에 처해졌습니다. 율법은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나무에 달리시므로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아버지의 저주 아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끝내 죽음의 자리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빌닷이 이야기했던 그 저주를 예수님의 자신의 생애를 통해 다 당하셨습니다. 욥이 죄가 없듯이 예수님도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았다고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래 빌닷이 말한 저주를 받아야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신명기에서 말씀하시는 저주를 받아야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의 자리가 본래 우리의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죄 없으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대신 저주를 받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저주에게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빌닷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적용했습니다. 우리는 이 빌닷이 말한 하나님의 말씀을 나에게 제대로 적용해야 합니다. 내가 받아야 하는 이 저주를 예수님이 대신 받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돌아보고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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