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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6월15일_욥기 13장 | 김덕종 | 2022-06-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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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욥기13:1-28절 개역개정1. 나의 눈이 이것을 다 보았고 나의 귀가 이것을 듣고 깨달았느니라 2. 너희 아는 것을 나도 아노니 너희만 못하지 않으니라 3. 참으로 나는 전능자에게 말씀하려 하며 하나님과 변론하려 하노라 4. 너희는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요 다 쓸모 없는 의원이니라 5. 너희가 참으로 잠잠하면 그것이 너희의 지혜일 것이니라 6. 너희는 나의 변론을 들으며 내 입술의 변명을 들어 보라 7. 너희가 하나님을 위하여 불의를 말하려느냐 그를 위하여 속임을 말하려느냐 8. 너희가 하나님의 낯을 따르려느냐 그를 위하여 변론하려느냐 9. 하나님이 너희를 감찰하시면 좋겠느냐 너희가 사람을 속임 같이 그를 속이려느냐 10. 만일 너희가 몰래 낯을 따를진대 그가 반드시 책망하시리니 11. 그의 존귀가 너희를 두렵게 하지 않겠으며 그의 두려움이 너희 위에 임하지 않겠느냐 12. 너희의 격언은 재 같은 속담이요 너희가 방어하는 것은 토성이니라 13. 너희는 잠잠하고 나를 버려두어 말하게 하라 무슨 일이 닥치든지 내가 당하리라 14. 내가 어찌하여 내 살을 내 이로 물고 내 생명을 내 손에 두겠느냐 15.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 16. 경건하지 않은 자는 그 앞에 이르지 못하나니 이것이 나의 구원이 되리라 17. 너희들은 내 말을 분명히 들으라 내가 너희 귀에 알려 줄 것이 있느니라 18. 보라 내가 내 사정을 진술하였거니와 내가 정의롭다 함을 얻을 줄 아노라 19. 나와 변론할 자가 누구이랴 그러면 내가 잠잠하고 기운이 끊어지리라 20. 오직 내게 이 두 가지 일을 행하지 마옵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얼굴을 피하여 숨지 아니하오리니 21. 곧 주의 손을 내게 대지 마시오며 주의 위엄으로 나를 두렵게 하지 마실 것이니이다 22. 그리하시고 주는 나를 부르소서 내가 대답하리이다 혹 내가 말씀하게 하옵시고 주는 내게 대답하옵소서 23. 나의 죄악이 얼마나 많으니이까 나의 허물과 죄를 내게 알게 하옵소서 24. 주께서 어찌하여 얼굴을 가리시고 나를 주의 원수로 여기시나이까 25. 주께서 어찌하여 날리는 낙엽을 놀라게 하시며 마른 검불을 뒤쫓으시나이까 26. 주께서 나를 대적하사 괴로운 일들을 기록하시며 내가 젊었을 때에 지은 죄를 내가 받게 하시오며 27. 내 발을 차꼬에 채우시며 나의 모든 길을 살피사 내 발자취를 점검하시나이다 28. 나는 썩은 물건의 낡아짐 같으며 좀 먹은 의복 같으니이다 사람들은 ‘사’자가 들어간 직업을 좋아합니다. 의‘사’, 변호‘사’ 같은 직업입니다. 사회적 지위도 높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명감으로 이런 직업을 택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의사나, 변호사는 정말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의사는 사람의 생명을 다룹니다. 변호사는 사람의 죄의 문제를 다룹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이런 사람들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아주 심각해집니다. 욥기 13장에서 욥은 친구들을 ‘사짜’ 의사, ‘사짜’ 변호사와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짜’라는 말은 사기꾼이라는 말입니다. “4 너희는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요 다 쓸모 없는 의원이니라” 새번역은 돌팔이 의사라고 번역합니다. 돌팔이 의사는 환자에게 나타난 증세를 잘못 진단합니다. 그러니 엉뚱한 처방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배탈이나 감기와 같은 가벼운 증세는 잘못 진단하고 처방을 해도 큰 탈이 없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암과 같이 심각한 병은 잘못 진단하면 큰일 납니다. 치료시기를 놓쳐 사람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욥의 친구들이 이런 돌팔이 의사와 같습니다. 욥이 고난당하는 현실이라는 증세를 보았습니다. 어떻게 진단하고 처방하나요? 욥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회개하라고 처방합니다. 엉터리 진단에 엉터리 처방이니 욥에게 먹힐 리가 없습니다. 돌팔이 의사가 차라리 진단을 하지 않았으면 다른 의사에게 가서 고칠 기회라도 있습니다.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 진단하고 치료하기에 문제가 생깁니다. 그래서 욥도 친구들에게 말합니다. 새번역입니다. “5 입이라도 다물고 있으면, 너희의 무식이 탄로 나지는 않을 것이다.” 또 욥은 친구들이 엉터리 변호사와 같다고 비난합니다. 변호사도 아주 중요합니다. 변호를 잘못하면 죄가 없는 사람이 벌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친구들은 왜 엉터리 변호사인가요? 역시 새번역입니다. “8 법정에서, 하나님을 변호할 셈이냐 ? 하나님을 변호하려고 논쟁을 할 셈이냐 ?” 욥이 볼 때 지금 친구들은 법정에서 하나님을 변호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고발은 욥이 하고 그 고발에 대하여 친구들이 하나님의 변호사를 자처하고 있습니다. 이게 욥이 볼 때 말이 안됩니다. 왜 변호사의 도움을 받나요? 보통 사람들은 법률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법에 정통한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법정에서 무죄를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변호사가 필요하신가요? 하나님은 전지하신 분이십니다. 이런 하나님보다 누가 더 많이 알아 하나님을 변호할 수 있나요? 뭐 백번 양보해서 하나님이 직접 변호하지 않으시니 나섰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변호하고 있습니다. 변호사가 법을 잘못알고 변호하면 오히려 상대방에게 공격을 받게 됩니다. 지금 친구들이 이렇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제한된 지식을 가지고 욥에게 하나님을 변호하려다가 욥의 공격만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욥은 이야기 합니다. 새번역입니다. 욥은 이렇게 엉터리 같은 말만 하는데 친구들에게 지쳤습니다. 친구들과의 대화에 절망하면서 이제 하나님께만 말하겠다고 합니다. “15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 지금 욥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하는 일입니다. “19 나와 변론할 자가 누구이랴 그러면 내가 잠잠하고 기운이 끊어지리라” 하나님이 나를 고발하면 내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죽을 각오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있습니다. 욥이 이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다른 곳에는 해결책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이 자신에게 이렇게 하시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도 바로 그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목숨을 건 욥의 기도가 시작됩니다. 죽음까지 각오한 욥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기에하나님에게 아주 강하게 항의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이런 일을 당할 죄를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알려 달라고 부르짖습니다. “23 나의 죄악이 얼마나 많으니이까 나의 허물과 죄를 내게 알게 하옵소서” 내 죄가 무엇인데 나를 원수같이 여기냐고 따지고 있습니다. 자신은 그저 날리는 낙엽이고 마른 지푸라기 같은 존재입니다. 이런 자신을 위협하시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리 깨끗한 옷이라도 털면 작은 먼지는 나게 마련입니다. 지금 하나님은 욥을 탈탈 털고 있습니다. “26 주께서 나를 대적하사 괴로운 일들을 기록하시며 내가 젊었을 때에 지은 죄를 내가 받게 하시오며 27 내 발을 차꼬에 채우시며 나의 모든 길을 살피사 내 발자취를 점검하시나이다” 어릴 때 지었던 잘못까지 다 들추어내어 고발하고 있습니다. 욥이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혹시 잘못하는 것이 없나 철저하게 조사하고 있습니다. 욥은 이런 하나님의 행동이 너무하고 억울하다고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욥의 이런 하소연은 충분히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 자체가 옳은 것은 아닙니다. 정말 하나님이 욥이 말하는 것과 같이 철저하게 사람의 죄를 조사하고 처벌하시면 어떻겠습니까? 완전하신 하나님 앞에 죄의 경중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에 대하여 그 때 그 때 즉각적으로 단호하게 벌을 주셨으면 욥은 물론이고 우리 중에 누구도 하나님 앞에 살 자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과응보의 하나님이 맞습니다. 이 인과응보조차 참으시며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자비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욥이 하나님께 잘못된 불평을 쏟아내고 있지만 이 지점에서 친구들과 차이가 있습니다. 욥은 고통의 상황에서, 친구들과 논쟁하면서 계속 하나님을 찾습니다. 자신의 문제를 사람 앞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가져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친구들은 논쟁 중에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욥을 위로하기 위해서 왔다고 하면서, 욥을 바로 잡기 위해서 말은 하는데 욥을 위하여 기도하지는 않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쏟아내는 말은 결국 진리와 동떨어진 돌팔이 의사나 엉터리 변호사와 같은 말 뿐입니다. 불평하더라도 기도해야 합니다. 하소연을 하나님께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과 논쟁하기 전에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이 기도가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가는 첫 걸음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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