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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6월13일_욥기12장 | 운영자 | 2022-06-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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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욥기12:1-25절 개역개정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2. 너희만 참으로 백성이로구나 너희가 죽으면 지혜도 죽겠구나 3. 나도 너희 같이 생각이 있어 너희만 못하지 아니하니 그같은 일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4. 하나님께 불러 아뢰어 들으심을 입은 내가 이웃에게 웃음거리가 되었으니 의롭고 온전한 자가 조롱거리가 되었구나 5. 평안한 자의 마음은 재앙을 멸시하나 재앙이 실족하는 자를 기다리는구나 6. 강도의 장막은 형통하고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는 자는 평안하니 하나님이 그의 손에 후히 주심이니라 7. 이제 모든 짐승에게 물어 보라 그것들이 네게 가르치리라 공중의 새에게 물어 보라 그것들이 또한 네게 말하리라 8. 땅에게 말하라 네게 가르치리라 바다의 고기도 네게 설명하리라 9. 이것들 중에 어느 것이 여호와의 손이 이를 행하신 줄을 알지 못하랴 10. 모든 생물의 생명과 모든 사람의 육신의 목숨이 다 그의 손에 있느니라 11. 입이 음식의 맛을 구별함 같이 귀가 말을 분간하지 아니하느냐 12. 늙은 자에게는 지혜가 있고 장수하는 자에게는 명철이 있느니라 13. 지혜와 권능이 하나님께 있고 계략과 명철도 그에게 속하였나니 14. 그가 헐으신즉 다시 세울 수 없고 사람을 가두신즉 놓아주지 못하느니라 15. 그가 물을 막으신즉 곧 마르고 물을 보내신즉 곧 땅을 뒤집나니 16. 능력과 지혜가 그에게 있고 속은 자와 속이는 자가 다 그에게 속하였으므로 17. 모사를 벌거벗겨 끌어 가시며 재판장을 어리석은 자가 되게 하시며 18. 왕들이 맨 것을 풀어 그들의 허리를 동이시며 19. 제사장들을 벌거벗겨 끌어 가시고 권력이 있는 자를 넘어뜨리시며 20. 충성된 사람들의 말을 물리치시며 늙은 자들의 판단을 빼앗으시며 21. 귀인들에게 멸시를 쏟으시며 강한 자의 띠를 푸시며 22. 어두운 가운데에서 은밀한 것을 드러내시며 죽음의 그늘을 광명한 데로 나오게 하시며 23. 민족들을 커지게도 하시고 다시 멸하기도 하시며 민족들을 널리 퍼지게도 하시고 다시 끌려가게도 하시며 24. 만민의 우두머리들의 총명을 빼앗으시고 그들을 길 없는 거친 들에서 방황하게 하시며 25. 빛 없이 캄캄한 데를 더듬게 하시며 취한 사람 같이 비틀거리게 하시느니라 욥기 12장에서 14장까지는 소발의 말에 대한 욥의 대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소발의 말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지만 앞에서 나왔던 세 친구들의 말에 대한 종합적인 결론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욥과 세 친구들의 논쟁의 1라운드가 끝나게 됩니다. 15장부터 2라운드가 시작됩니다. 욥과 세 친구들의 논쟁을 보면서 이런 말이 생각났습니다. ‘맞는 말 대잔치’ 그동안 살펴보았던 친구들이나 욥의 말들을 보면 다 맞는 말입니다. 성경적이고 신학적으로도 옳은 맞는 말들이었습니다. 맥락과 상관없이 이들의 주장만 따로 모아서 설교를 하면 좋은 설교 한 편이 나올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맞는 말을 가지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언어를 가지고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입니다. 교회에서도 간혹 이런 경우들을 보게 됩니다. 서로 간에 논쟁이 생겼을 때 보면 다 맞는 말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다들 성경을 기반으로 해서 맞는 이야기들을 합니다. 그런데 이런 맞는 말들이 서로에게 힘이 되고 서로를 세워주지 못합니다. 서로를 공격하고 생채기를 내기 바쁩니다. 분명 성경적인 언어인데 그 결과는 상처뿐입니다. 맞는 말을 하기는 하지만 내가 아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잘 모르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도 비슷한 것을 보게 됩니다. 욥은 역시 소발의 말에 강하게 반발합니다. “2 너희만 참으로 백성이로구나 너희가 죽으면 지혜도 죽겠구나” 친구들이 지금 자신들만 똑똑하고 다 아는 척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똑똑한 친구들이 죽으면 이제 이 세상에 지혜로운 자는 남아있지 않겠다고 조롱하고 있습니다. 친구들이 말했던 것은 친구들만 아는 것이 아닙니다. “3 나도 너희 같이 생각이 있어 너희만 못하지 아니하니 그같은 일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하나님이 의로운 자는 상을 주시고 악한 자에게 벌을 준다는 것은 욥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니 사람뿐만 아닙니다. 7절부터 보면 땅의 짐승들도 공중의 새도 바다의 물고기들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귀가 소리를 듣는 것처럼, 혀가 음식 맛을 아는 것처럼 당연히 아는 것입니다. 누구나 아는 보편적인 진리입니다. 그런데 지금 욥의 상황은 이 보편적인 진리와 어긋납니다. 나는 의로운데 웃음거리가 되고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강도들은 잘 살고 있고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는 자들도 평안히 살고 있습니다. 욥은 친구들이 말하는 것을 알지 못해서 괴로운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말하는 보편적인 인과응보의 진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봐도 세상을 봐도 그동안 아는 것과는 다르게 작동하는 것을 보며 고통 속에서 더 절망하고 있습니다. 이런 욥에게 친구들은 어떻게 하나요? 새번역입니다. “5하 너희는 넘어지려는 사람을 떠민다.” ‘불난데 부채질 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어려울 때 도움이 되기는커녕 일만 더 크게 만드는 것입니다. 욥이 보기에 친구들이 딱 이렇습니다. 지금 욥은 넘어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욥을 잡아 일으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넘어지라고 떠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친구들을 비난한 욥은 자신이 알고 있는 하나님에 대하여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욥이 알고 있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13 지혜와 권능이 하나님께 있고 계략과 명철도 그에게 속하였나니” 욥은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을 말하고 있습니다. 16절에서도 보면 능력과 지혜가 하나님께 있다고 고백합니다. 지혜와 능력은 어떤 일을 하는데 필수적입니다. 아무리 똑똑하고 잘 알더라도 일을 감당할 능력이 없으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일을 잘 하더라도 지혜가 없으면 제대로 일을 처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혜와 능력을 다 갖추신 분이십니다. 어떤 일도 하실 수 있습니다. 14절부터 욥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욥이 열거하고 있는 일들은 대부분 부정적입니다. “14 그가 헐으신즉 다시 세울 수 없고 사람을 가두신즉 놓아주지 못하느니라” 하나님이 허시면 다시 세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가두시면 누구도 풀 수 없습니다. “17 모사를 벌거벗겨 끌어 가시며 재판장을 어리석은 자가 되게 하시며 18 왕들이 맨 것을 풀어 그들의 허리를 동이시며 19 제사장들을 벌거벗겨 끌어 가시고 권력이 있는 자를 넘어뜨리시며” 아무리 고관이라도, 아무리 재판관이라도, 아무리 왕이라도, 아무리 제사장이라도, 어떤 권세를 가지고 있더라도 하나님은 그것들을 다 넘어뜨릴 수 있습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의 지혜도 다 빼앗으시고 거친 들에서 방황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 앞에서 세상의 힘과 권력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지금 욥의 말은 맞습니다. 하나님은 강한 자도 악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높은 자를 낮추기도 하시고, 부유한 자를 가난하게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욥은 지금 파괴적인 하나님만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한 면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욥이 묘사하는 하나님의 모습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다는 아닙니다. 사실과 진실은 다르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사실을 많이 이야기해도 그것이 진실이 아닐 수 있습니다. 언론 보도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나 일에 대한 부정적인 사실만 보도 합니다. 하지만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유와 과정은 보도 하지 않습니다. 그 보도 자체는 맞지만 그 보도가 어떤 일이나 사람에 대한 진실일 수는 없습니다. 욥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모습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전부는 아닙니다. 하나님은 반대의 일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가난한 자를 부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낮은 자를 높이는 분입니다. 넘어진 자를 일으키시는 분입니다. 심지어 죄인들을 구하기 위해 연약한 인간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욥은 이런 하나님의 모습은 외면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지금 욥이 당하는 고통이 욥을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욥의 고통은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왜곡하고 말았습니다. 친구들은 이 고통을 알기 못하기에 잘못 판단했습니다. 새번역 ‘5상 고통을 당해 보지 않은 너희가 불행한 내 처지를 비웃고 있다.’ 반대로 욥은 고통 속에서 잘못 판단하고 있습니다. 친구들이 알고 있는 하나님의 모습은 제한적입니다. 욥이 알고 있는 하나님의 모습 또한 제한적입니다. 욥이나 친구들이나 천상에서 있었던 하나님과 사탄의 대화를 알지 못합니다. 사람이 알 수 있는 하나님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제한된 지식을 가지고 다 아는 것처럼 말해서는 안됩니다. 욥이 비록 모진 고난과 아픔 속에 오해하고, 오판하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욥에게는 희망의 모습이 있습니다. 이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악플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무플이라고들 합니다. 지금 욥은 하나님에 대하여 악플을 달고 있습니다. 당장은 악플을 달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을 통해 결국 하나님의 참 모습을 찾아가게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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