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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6월8일_욥기 10장 김덕종 2022-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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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욥기10:1-22절 개역개정

1.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 내 불평을 토로하고 내 마음이 괴로운 대로 말하리라

2. 내가 하나님께 아뢰오리니 나를 정죄하지 마시옵고 무슨 까닭으로 나와 더불어 변론하시는지 내게 알게 하옵소서

3. 주께서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학대하시며 멸시하시고 악인의 꾀에 빛을 비추시기를 선히 여기시나이까

4. 주께도 육신의 눈이 있나이까 주께서 사람처럼 보시나이까

5. 주의 날이 어찌 사람의 날과 같으며 주의 해가 어찌 인생의 해와 같기로

6. 나의 허물을 찾으시며 나의 죄를 들추어내시나이까

7. 주께서는 내가 악하지 않은 줄을 아시나이다 주의 손에서 나를 벗어나게 할 자도 없나이다

8. 주의 손으로 나를 빚으셨으며 만드셨는데 이제 나를 멸하시나이다

9. 기억하옵소서 주께서 내 몸 지으시기를 흙을 뭉치듯 하셨거늘 다시 나를 티끌로 돌려보내려 하시나이까

10. 주께서 나를 젖과 같이 쏟으셨으며 엉긴 젖처럼 엉기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11. 피부와 살을 내게 입히시며 뼈와 힘줄로 나를 엮으시고

12. 생명과 은혜를 내게 주시고 나를 보살피심으로 내 영을 지키셨나이다

13. 그러한데 주께서 이것들을 마음에 품으셨나이다 이 뜻이 주께 있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14. 내가 범죄하면 주께서 나를 죄인으로 인정하시고 내 죄악을 사하지 아니하시나이다

15. 내가 악하면 화가 있을 것이오며 내가 의로울지라도 머리를 들지 못하는 것은 내 속에 부끄러움이 가득하고 내 환난을 내 눈이 보기 때문이니이다

16. 내가 머리를 높이 들면 주께서 젊은 사자처럼 나를 사냥하시며 내게 주의 놀라움을 다시 나타내시나이다

17. 주께서 자주자주 증거하는 자를 바꾸어 나를 치시며 나를 향하여 진노를 더하시니 군대가 번갈아서 치는 것 같으니이다

18. 주께서 나를 태에서 나오게 하셨음은 어찌함이니이까 그렇지 아니하셨더라면 내가 기운이 끊어져 아무 눈에도 보이지 아니하였을 것이라

19. 있어도 없던 것 같이 되어서 태에서 바로 무덤으로 옮겨졌으리이다

20. 내 날은 적지 아니하니이까 그런즉 그치시고 나를 버려두사 잠시나마 평안하게 하시되

21. 내가 돌아오지 못할 땅 곧 어둡고 죽음의 그늘진 땅으로 가기 전에 그리하옵소서

22. 땅은 어두워서 흑암 같고 죽음의 그늘이 져서 아무 구별이 없고 광명도 흑암 같으니이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법정이 배경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검사는 피고의 죄를 고발합니다.

변호사는 피고의 죄를 변호합니다.

판사나 배심원을 앞에 두고 벌이는 검사와 변호사의 논리 대결이 아주 볼만합니다.

욥기 10장을 보면 법정을 보는 것 같습니다.

검사는 욥입니다.

검사 욥이 고발하는 피고는 하나님입니다.

욥은 아주 신랄하게 하나님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욥의 첫 번째 고발은 하나님의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3 주께서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학대하시며 멸시하시고 악인의 꾀에 빛을 비추시기를 선히 여기시나이까

 

욥이 보기에 하나님은 하나님이 지으신 자기를 학대하며 멸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악한 자의 계획은 잘 되게 하냐고 따지고 있습니다.

한 전직 대통령이 1995년 내란혐의 재판에서 했던 말이 유행어가 된 적이 있습니다.
왜 나만 갖고 그래

재판에서 이 전직 대통령은 자신의 잘못에 대한 어떠한 사과나 반성도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은 억울하다는 입장만 반복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이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 왜 나만 갖고 그래입니다.

욥의 상황은 다르기는 합니다.

욥은 잘못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고소하는 내용은 비슷합니다.

왜 하나님이 자기만 괴롭게 하냐고 따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다

사람들은 옳고 그름의 문제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나만 손해 보는 것을 더 참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기가 당하는 고난이 모든 사람이 다 동일하게 당하는 것이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자기와 같은 고난을 받는 사람은 없습니다.

심지어 정말 벌을 받아야 하는 악한 자는 아무 고난도 없이 오히려 잘 나가고 있습니다.

욥은 이런 부당한 현실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욥은 하나님이 자신에게만 사람처럼 행동한다고 고발하고 있습니다.

“4 주께도 육신의 눈이 있나이까 주께서 사람처럼 보시나이까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그 중심을 보는 분이십니다.

 

“5 주의 날이 어찌 사람의 날과 같으며 주의 해가 어찌 인생의 해와 같기로

 

또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사람처럼 짧은 인생을 살지 않습니다.

사람처럼 단편적으로 판단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그런 하나님이 사람들이 보듯 자신을 보고 있습니다.

자신의 허물만 찾아 들춰내고 있습니다.

사람의 내면을 볼 수 있으니 자신에게 죄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죄인 취급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욥의 고발은 하나님이 자신을 기만했다는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이 본래 자신에게 어떤 분이셨는지를 말합니다.

“10 주께서 나를 젖과 같이 쏟으셨으며 엉긴 젖처럼 엉기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11 피부와 살을 내게 입히시며 뼈와 힘줄로 나를 엮으시고 12 생명과 은혜를 내게 주시고 나를 보살피심으로 내 영을 지키셨나이다

 

욥을 지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욥의 피부에 살을 입히시고 뼈와 힘줄을 엮어주셨습니다.

생명과 은혜를 주시며 지금까지 지켜주셨습니다.

지금까지 욥은 이런 하나님을 알았고 그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이 모든 것이 다 기만이었습니다.

13절을 새번역으로 보겠습니다.

“13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니, 주께서는 늘 나를 해치실 생각을 몰래 품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자신을 해칠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옳은 일을 하더라도 믿어주지 않고 수치만 가득하게 하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머리를 들면 젊은 사자처럼 자신을 사냥하려고 달려들고 있습니다.

진노에 진노를 더해서 공격하는 것이 군대가 번갈아 치는 것과 같은 형편입니다.

그전에 자신에게 베풀었던 그 은혜와 사랑은 다 기만이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법정에 호소할 때는 공정한 판결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자신의 억울한 사정이 해결될 것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욥의 고발은 이런 기대조차도 할 수 없습니다.

검사가 되어서 하나님을 매섭게 고발하지만 욥이 하나님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욥은 자기 스스로에게 판결을 내립니다.

욥이 내린 판결은 사형입니다.

“18 주께서 나를 태에서 나오게 하셨음은 어찌함이니이까 그렇지 아니하셨더라면 내가 기운이 끊어져 아무 눈에도 보이지 아니하였을 것이라 19 있어도 없던 것 같이 되어서 태에서 바로 무덤으로 옮겨졌으리이다

 

3장에서와 같이 자신이 차라리 죽은 채로 태어나는 것이 좋았다고 말합니다.

더 이상 이 땅에서 살 이유가 없습니다.

이제 어둡고 죽음의 그늘진 땅으로 갈 것입니다.

그 때까지만 이라도 자신을 잠시 내버려 두라고 최후 변론을 하듯이 호소하고 있습니다.

검사처럼 하나님을 고발했지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인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이런 욥의 모습은 당혹스럽습니다.

하나님을 고발하는 모습은 불경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나님과 다투는 모습에서 우리는 오히려 소망을 보게 됩니다.

“1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 내 불평을 토로하고 내 마음이 괴로운 대로 말하리라

 

성경에 보면 이 욥의 고백과 비슷한 고백을 한 여인이 있습니다.

삼상1:15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16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 하는지라

 

물론 두 사람의 상황은 다릅니다.

한나는 아이를 갖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브닌나는 한나를 아주 괴롭게 했습니다.

한나는 이 원통함과 격분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왔습니다.

욥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을 괴롭힌다는 원통함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공통점은 둘 다 그 원통한 심정을 하나님께 푼다는 것입니다.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욥은 하나님을 고발하면서 다른 이에게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하나님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참 역설적인 상황이지만 그래서 욥이 더 괴롭기는 하지만 그래도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하나님 외에 이 상황을 풀 수 있는 다른 이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욥이 하나님과 다투고 고발하는 것 자체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거친 첫 걸음이 됩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이 했던 말 중에 벽에 대고서라도 소리를 쳐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할 수 있는 다해야 하는데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은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이라도 하라는 말이었습니다.

어떤 절망의 순간에도 우리는 소리 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소리치는 대상은 담벼락이 아닙니다.

인격적인 하나님입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입니다.

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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