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2년5월25일_욥기6장 | 운영자 | 2022-05-25 | |||
|
|||||
[성경본문] 욥기6:1-30절 개역개정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2. 나의 괴로움을 달아 보며 나의 파멸을 저울 위에 모두 놓을 수 있다면 3. 바다의 모래보다도 무거울 것이라 그러므로 나의 말이 경솔하였구나 4. 전능자의 화살이 내게 박히매 나의 영이 그 독을 마셨나니 하나님의 두려움이 나를 엄습하여 치는구나 5. 들나귀가 풀이 있으면 어찌 울겠으며 소가 꼴이 있으면 어찌 울겠느냐 6. 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 닭의 알 흰자위가 맛이 있겠느냐 7. 내 마음이 이런 것을 만지기도 싫어하나니 꺼리는 음식물 같이 여김이니라 8. 나의 간구를 누가 들어 줄 것이며 나의 소원을 하나님이 허락하시랴 9. 이는 곧 나를 멸하시기를 기뻐하사 하나님이 그의 손을 들어 나를 끊어 버리실 것이라 10.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 11. 내가 무슨 기력이 있기에 기다리겠느냐 내 마지막이 어떠하겠기에 그저 참겠느냐 12. 나의 기력이 어찌 돌의 기력이겠느냐 나의 살이 어찌 놋쇠겠느냐 13. 나의 도움이 내 속에 없지 아니하냐 나의 능력이 내게서 쫓겨나지 아니하였느냐 14. 낙심한 자가 비록 전능자를 경외하기를 저버릴지라도 그의 친구로부터 동정을 받느니라 15. 내 형제들은 개울과 같이 변덕스럽고 그들은 개울의 물살 같이 지나가누나 16. 얼음이 녹으면 물이 검어지며 눈이 그 속에 감추어질지라도 17. 따뜻하면 마르고 더우면 그 자리에서 아주 없어지나니 18. 대상들은 그들의 길을 벗어나서 삭막한 들에 들어가 멸망하느니라 19. 데마의 떼들이 그것을 바라보고 스바의 행인들도 그것을 사모하다가 20. 거기 와서는 바라던 것을 부끄러워하고 낙심하느니라 21. 이제 너희는 아무것도 아니로구나 너희가 두려운 일을 본즉 겁내는구나 22. 내가 언제 너희에게 무엇을 달라고 말했더냐 나를 위하여 너희 재물을 선물로 달라고 하더냐 23. 내가 언제 말하기를 원수의 손에서 나를 구원하라 하더냐 폭군의 손에서 나를 구원하라 하더냐 24. 내게 가르쳐서 나의 허물된 것을 깨닫게 하라 내가 잠잠하리라 25. 옳은 말이 어찌 그리 고통스러운고, 너희의 책망은 무엇을 책망함이냐 26. 너희가 남의 말을 꾸짖을 생각을 하나 실망한 자의 말은 바람에 날아가느니라 27. 너희는 고아를 제비 뽑으며 너희 친구를 팔아 넘기는구나 28. 이제 원하건대 너희는 내게로 얼굴을 돌리라 내가 너희를 대면하여 결코 거짓말하지 아니하리라 29. 너희는 돌이켜 행악자가 되지 말라 아직도 나의 의가 건재하니 돌아오라 30. 내 혀에 어찌 불의한 것이 있으랴 내 미각이 어찌 속임을 분간하지 못하랴 많이 쓰는 관용어 중에 ‘봇물이 터지듯’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농사를 지을 때 평소에 물을 저장하기 위해 보를 만들어 물을 가두어 둡니다. 하지만 장마 등으로 물이 너무 많이 고이게 되면 보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보의 일부를 터트려 쌓인 물을 빼주게 됩니다. 이 때 가득 모여 있던 물이 좁은 곳으로 빠져나가니 물이 세차게 쏟아져 나옵니다. 오늘 본문의 욥을 보면 봇물이 터진 듯 말을 쏟아냅니다. 앞서 보았던 1장과 2장에서 고난이 시작되었을 때 욥의 모습과 너무나 다릅니다. 감당하기 힘든 고난에도 욥은 별 말이 없었습니다. 불평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3장에서부터 말이 많아지기 시작합니다. 이제 엘리바스의 충고를 들은 후에는 말 그대로 봇물 터지듯 말을 합니다. 이렇게 봇물 터지듯 말을 쏟아내는 것은 지금 욥이 당하는 고난과 아픔이 도저히 입을 닫고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고난의 무게가 욥의 입을 터져 열리게 했습니다. 이 고난이 얼마나 무거운가요? “2 나의 괴로움을 달아 보며 나의 파멸을 저울 위에 모두 놓을 수 있다면 3 바다의 모래보다도 무거울 것이라 그러므로 나의 말이 경솔하였구나” 자신의 괴로움을 저울에 달면 바다의 모래보다 무거울 것이라고 말합니다. 모래 한 알이 아닙니다. 넓은 해변 모래사장의 그 많은 모래의 무게가 욥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짓누르니 말이 경솔했다고 말합니다. 다른 번역 성경을 보면 말이 거칠었다고 번역합니다. 욥은 평소에 거친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바다 모래보다 무거운 고난의 무게는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것까지 다 토하게 만들었습니다. 마지막 치약을 짤 때 돌돌 말아 남김없이 다 짜내듯이 고난의 무게는 욥의 모든 것을 다 짜내어 말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 무게는 욥이 견딜 수 있는 무게가 아닙니다. 힘들어도 끙끙거리며 버틸 수 있는 무게가 아닙니다. 욥의 친구들은 이 무게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얼마나 무거운지 감도 잡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욥의 입에서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말만 가지고 욥을 정죄합니다. 욥은 이런 친구들을 무섭게 질책하고 있습니다. 6,7절에 보면 음식의 비유가 있습니다. “6 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 닭의 알 흰자위가 맛이 있겠느냐 7 내 마음이 이런 것을 만지기도 싫어하나니 꺼리는 음식물 같이 여김이니라” 이 음식의 비유는 욥이 당하는 고난에 대한 비유로 볼 수도 있습니다. 욥의 고난이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음식처럼 쓰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욥의 친구들에 대한 비유로도 볼 수 있습니다. 음식 광고를 위해서 사진을 찍을 때 중요한 것은 먹음직스럽게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음식을 더 맛나게 보이기 위해 글리세린이나 구두약 스프레이 같은 것을 사용합니다. 때로 음식에 매니큐어를 칠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촬영에 쓰인 음식들은 보기는 정말 맛깔납니다. 하지만 사람이 먹을 수는 없습니다. 친구들의 충고가 이런 음식과 같습니다. 보기는 맛있게 보이지만 전혀 간이 되지 않아 먹을 수가 없습니다. 듣기에는 다 맞는 말 같고 좋은 말 같지만 전혀 도움이 안되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욥은 친구들을 강하게 비난합니다. 새번역입니다. “15 친구라는 것들은, 물이 흐르다가도 마르고 말랐다가도 흐르는 개울처럼 미덥지 못하고 배신감만 느끼게 하는구나. 16 얼음이 녹으면 흙탕물이 흐르고, 눈이 녹으면 물이 넘쳐흐르다가도,17 날이 더워지면 쉬 마르고, 날이 뜨거워지면 흔적조차 없어지고 마는 개울.” 목이 마르면 시원한 물을 마시러 개울을 찾습니다. 그런데 이 개울은 얼음이 녹으면 흙탕물이 되어 먹을 수 없습니다. 당장 눈이 녹으면 넘실대는 것 같은데 정작 물이 필요한 더운 날씨가 되면 다 말라 버리는 개울입니다. 욥은 지금 친구가 필요합니다. 위로자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정작 욥이 친구가 필요할 때 욥의 친구들은 위로자가 아니라 대적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자신을 짓누르는 고난의 무게, 대적자가 되버린 친구들. 이런 상황에서 욥은 하나님께 차라리 자신의 죽음을 소망합니다. “9 이는 곧 나를 멸하시기를 기뻐하사 하나님이 그의 손을 들어 나를 끊어 버리실 것이라” 이렇게 죽음까지 생각하고 있는 욥이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의 의로움입니다. “10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았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29 너희는 돌이켜 행악자가 되지 말라 아직도 나의 의가 건재하니 돌아오라” 자신의 의는 건재하다고, 아무 잘못도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욥은 자신이 자신의 죄 때문에 고난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동시에 또 아는 것이 있습니다. 자신의 고난이 어디서 오는 것인가 입니다. “4 전능자의 화살이 내게 박히매 나의 영이 그 독을 마셨나니 하나님의 두려움이 나를 엄습하여 치는구나” 하나님이 욥을 향해 화살을 쏘십니다. 그 활을 맞고 욥은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고난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1,2장에서 이미 보았습니다. 사탄이 욥을 시험하고 고난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탄도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욥이 겪는 고난의 문제는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습니다. 욥은 자신이 왜 이런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잘못도 없이 이런 고통을 당하는 것이 억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해결책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향하여 불평하고 원망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죽여 달라는 말은 얼핏 들으면 신앙을 버린 자의 외침 갖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자가 외치는 절망의 소리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욥의 부르짖음은 신앙을 버린 자의 외침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하나님께 외치고 있습니다. 욥의 부르짖음은 죽음을 각오한 신앙을 다시 찾고자 하는 자의 외침입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는 친구들은 욥의 신앙을 오히려 탓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삶에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닥칠 때가 있습니다. 받아드릴 수 없는 어려움이 우리를 힘들게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습니다. 그 해결책도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있습니다. |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