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1장 묵상

  • 홈 >
  • 예배/설교/묵상 >
  • 성경 1장 묵상
성경 1장 묵상
2022년5월20일_욥기 4장 김덕종 2022-05-20
  • 추천 0
  • 댓글 0
  • 조회 590

http://donginch.com/bbs/bbsView/35/6088241

[성경본문] 욥기4:1-21절 개역개정

1.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여 이르되

2. 누가 네게 말하면 네가 싫증을 내겠느냐, 누가 참고 말하지 아니하겠느냐

3. 보라 전에 네가 여러 사람을 훈계하였고 손이 늘어진 자를 강하게 하였고

4. 넘어지는 자를 말로 붙들어 주었고 무릎이 약한 자를 강하게 하였거늘

5. 이제 이 일이 네게 이르매 네가 힘들어 하고 이 일이 네게 닥치매 네가 놀라는구나

6. 네 경외함이 네 자랑이 아니냐 네 소망이 네 온전한 길이 아니냐

7.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8. 내가 보건대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

9. 다 하나님의 입 기운에 멸망하고 그의 콧김에 사라지느니라

10. 사자의 우는 소리와 젊은 사자의 소리가 그치고 어린 사자의 이가 부러지며

11. 사자는 사냥한 것이 없어 죽어 가고 암사자의 새끼는 흩어지느니라

12. 어떤 말씀이 내게 가만히 이르고 그 가느다란 소리가 내 귀에 들렸었나니

13. 사람이 깊이 잠들 즈음 내가 그 밤에 본 환상으로 말미암아 생각이 번거로울 때에

14.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러서 모든 뼈마디가 흔들렸느니라

15. 그 때에 영이 내 앞으로 지나매 내 몸에 털이 주뼛하였느니라

16. 그 영이 서 있는데 나는 그 형상을 알아보지는 못하여도 오직 한 형상이 내 눈 앞에 있었느니라 그 때에 내가 조용한 중에 한 목소리를 들으니

17. 사람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깨끗하겠느냐

18. 하나님은 그의 종이라도 그대로 믿지 아니하시며 그의 천사라도 미련하다 하시나니

19. 하물며 흙 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 앞에서라도 무너질 자이겠느냐

20. 아침과 저녁 사이에 부스러져 가루가 되며 영원히 사라지되 기억하는 자가 없으리라

21. 장막 줄이 그들에게서 뽑히지 아니하겠느냐 그들은 지혜가 없이 죽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교회에서 일을 하다 보면 분쟁이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의견이 달라 분쟁이 생기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다만 교회 내에서 의견이 갈라지면 세상 보다 더 수습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유가 뭘까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안 그런 경우도 있지만 교회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좋은 뜻으로 합니다.

돈을 받고 하거나 어떤 이득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잘 섬기려는 좋은 뜻으로 합니다.

여기에서 자신이 하는 주장에 정당성이 생깁니다.

사심 없이 일하기에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 것에 어떤 거리낌도 없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꽤 오랜 시간 욥의 세 친구에 대하여 살펴볼 것입니다.

이 세 친구는 욥과 치열한 논쟁을 합니다.

아무리 욥에 반박을 하더라도 한 치의 물러섬도 없습니다.

이 친구들이 이럴 수 있었던 이유는 좋은 뜻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친구들은 욥을 괴롭히기 위해 논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 중에 있는 욥을 구해주고자 하는 좋은 뜻으로 하고 있습니다.

친구들이 처음 욥에게 온 이유는 욥을 위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2:11 그 때에 욥의 친구 세 사람이 이 모든 재앙이 그에게 내렸다 함을 듣고 각각 자기 지역에서부터 이르렀으니 곧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라 그들이 욥을 위문하고 위로하려 하여 서로 약속하고 오더니

 

와서도 섣불리 욥을 위로하지 않습니다.

욥의 형편을 보고 너무나 가슴이 아파 7일 동안 말 한마디 안하고 같이 앉아있기만 했습니다.

참 좋은 위로자의 모습입니다.

이랬던 친구들이 욥기 4장부터 욥을 날카롭게 공격합니다.

친구들이 이렇게 변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욥기 3장의 욥의 말 때문입니다.

고통 속에 있던 욥이 폭발합니다.

문제는 단순히 자신의 신세를 한탄만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고통의 원인이 하나님께 있는 듯이 말하기 시작합니다.

욥의 친구들은 이 말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욕먹는 것을 두고만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발끈하여 욥에게 충고하기 시작합니다.

고통 받는 친구를 위로하려고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왔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욕먹는 것을 참지 않습니다.

정말 좋은 뜻으로 논쟁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좋은 뜻이 욥을 더 궁지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첫 번째 욥에게 말을 한 사람은 엘리바스입니다.

엘리바스의 주장은 아주 단순하고 명백합니다.

“7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8 내가 보건대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

 

죄 없이 망한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은 뿌린 대로 거둡니다.

인과응보, 권선징악의 원리입니다.

너무나 익숙한 경구입니다.

어린 시절 많이 보았던 동화책에 항상 나오는 결말입니다.

선한 사람은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은 벌을 받습니다.

엘리바스가 인과응보를 이야기하는 것은 단지 사람들이 생각하는 보편적인 진리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이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구약의 신명기를 들 수 있습니다.

신명기의 주제를 아주 단순하게 요약하면 권선징악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벌을 받습니다.

28: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28:15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

 

엘리바스는 성경을 근거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13절 이하에 보면 환상 중에 분명한 목소리도 들었습니다.

“17 사람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깨끗하겠느냐

 

하나님은 의롭고 하나님보다 깨끗한 자는 없습니다.

성경에 근거합니다.

환상도 보았습니다.

엘리바스는 확신을 가지고 좋은 뜻으로 욥에게 충고합니다.

욥이 지금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한 자는 복을 주고 악한 자는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욥이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면 무언가 잘못이 있기에 이런 심판을 받고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엘리바스의 이런 생각을 어떻게 봐야 하나요?

일단 엘리바스의 생각이 틀린 것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이미 1,2장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욥은 하나님 앞에서 누구보다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욥은 죄를 지어서 고난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엘리바스는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욥은 인과응보의 예외인가요?

인과응보는 성경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기에 선한 자는 상주시고, 악한 자는 벌하십니다.

욥은 여기에서 예외라고 말하면 하나님의 공의에 예외가 생깁니다.

아무리 확실하게 보이는 과학법칙도 예외가 있다면 보편타당한 진리가 될 수 없습니다.

예외가 있는 진리는 진리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욥의 경우는 어떻게 봐야 하나요?

성경 말씀을 근거로 욥을 판단한 엘리바스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요?

 

인과응보의 원리에서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원인이 결과를 가져옵니다.

선한 사람은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은 심판을 받습니다.

하지만 결과를 보고 원인을 파악하는 것은 주의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28장에 보면 바울이 탄 배가 난파된 후 멜리데라는 섬에 도착합니다.

이 때 바울이 불을 피우다 독사에 물립니다.

이 모습을 본 원주민들은 바울이 살인한 자라고 판단합니다.

바다에서 구조를 받았는데도 독사에 물린 것을 보면 정말 악한 죄를 지은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원주민들은 독사를 물린 결과를 보고 바울이 살인을 저지른 악한 자라고 평가했습니다.

바울은 악한 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복음을 전하다 잡혀가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엘리바스나 원주민들이 알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 자신들이 보고 있는 모습이 최종적인 결과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당장은 어떤 일의 결과처럼 보이지만 또 다른 결과를 위한 원인과 과정일 수 있습니다.

결국 멜리데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나요?

원주민들은 바울이 죽기를 기다렸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자 오히려 바울을 신처럼 여겨 바울과 일행을 잘 대접합니다.

바울은 섬에 있던 병자들을 고쳐줍니다.

바울이 독사에 물린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었습니다.

이것을 모르면 눈앞에 보이는 현실만 보고 잘못 판단하게 됩니다.

엘리바스는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인과응보만 알고 있습니다.

궁극적인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고민이 없습니다.

이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도 마지막 결과가 아닙니다.

최후의 결과는 마지막 하나님의 심판의 때에 있습니다.

엘리바스는 이것을 알지 못했기에 잘못된 판단을 가지고 고난 받는 욥을 더 괴롭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한계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현재의 모습과 결과를 다 아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현재의 모습을 보고 판단하셔도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내가 아는 것은 일부일 뿐입니다.
일부만 알면서 다 아는 거처럼 판단하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나만 옳은 듯이 주장해서도 안됩니다.

나의 부족함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럴 때 고난의 현실을 조금은 더 따듯한 눈길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2022년5월23일_욥기 5장 김덕종 2022.05.23 0 664
다음글 2022년5월13일_욥기 3장 운영자 2022.05.13 0 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