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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5월13일_욥기 3장 운영자 2022-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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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욥기3:1-26절 개역개정

1. 그 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니라

2. 욥이 입을 열어 이르되

3. 내가 난 날이 멸망하였더라면, 사내 아이를 배었다 하던 그 밤도 그러하였더라면,

4. 그 날이 캄캄하였더라면, 하나님이 위에서 돌아보지 않으셨더라면, 빛도 그 날을 비추지 않았더라면,

5. 어둠과 죽음의 그늘이 그 날을 자기의 것이라 주장하였더라면, 구름이 그 위에 덮였더라면, 흑암이 그 날을 덮었더라면,

6. 그 밤이 캄캄한 어둠에 잡혔더라면, 해의 날 수와 달의 수에 들지 않았더라면,

7. 그 밤에 자식을 배지 못하였더라면, 그 밤에 즐거운 소리가 나지 않았더라면,

8. 날을 저주하는 자들 곧 리워야단을 격동시키기에 익숙한 자들이 그 밤을 저주하였더라면,

9. 그 밤에 새벽 별들이 어두웠더라면, 그 밤이 광명을 바랄지라도 얻지 못하며 동틈을 보지 못하였더라면 좋았을 것을,

10. 이는 내 모태의 문을 닫지 아니하여 내 눈으로 환난을 보게 하였음이로구나

11.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내 어머니가 해산할 때에 내가 숨지지 아니하였던가

12. 어찌하여 무릎이 나를 받았던가 어찌하여 내가 젖을 빨았던가

13. 그렇지 아니하였던들 이제는 내가 평안히 누워서 자고 쉬었을 것이니

14. 자기를 위하여 폐허를 일으킨 세상 임금들과 모사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요

15. 혹시 금을 가지며 은으로 집을 채운 고관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며

16. 또는 낙태되어 땅에 묻힌 아이처럼 나는 존재하지 않았겠고 빛을 보지 못한 아이들 같았을 것이라

17. 거기서는 악한 자가 소요를 그치며 거기서는 피곤한 자가 쉼을 얻으며

18. 거기서는 갇힌 자가 다 함께 평안히 있어 감독자의 호통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19. 거기서는 작은 자와 큰 자가 함께 있고 종이 상전에게서 놓이느니라

20. 어찌하여 고난 당하는 자에게 빛을 주셨으며 마음이 아픈 자에게 생명을 주셨는고

21. 이러한 자는 죽기를 바라도 오지 아니하니 땅을 파고 숨긴 보배를 찾음보다 죽음을 구하는 것을 더하다가

22. 무덤을 찾아 얻으면 심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나니

23. 하나님에게 둘러 싸여 길이 아득한 사람에게 어찌하여 빛을 주셨는고

24. 나는 음식 앞에서도 탄식이 나며 내가 앓는 소리는 물이 쏟아지는 소리 같구나

25.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26.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

제공: 대한성서공회

임계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리학에서 물질의 구조와 성질이 다른 상태로 바뀔 때의 온도와 압력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물은 1기압 100도에서 수증기로 변합니다.

액체에서 기체라는 전혀 다른 구조와 성질로 바뀌게 됩니다.

욥기 3장에 나오는 욥의 모습은 임계점을 돌파한 것 같이 보입니다.

1장과 2장에 나오는 욥의 모습과 3장에 나오는 욥의 모습이 너무나 달라 보이기 때문입니다.

전혀 다른 사람 같습니다.

1장과 2장의 욥은 어땠나요?

1장에서 욥에게 연속적으로 고난이 닥쳤습니다.

모든 재산을 다 잃고 자녀들도 하루 만에 다 잃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욥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1:21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2장에서 욥은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났습니다.

차라리 그냥 죽는 것이 나아보일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욥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10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

 

이랬던 욥이 3장에서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1 그 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니라

 

입으로 범죄 하지 않았던 욥이 입을 열어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1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내 어머니가 해산할 때에 내가 숨지지 아니하였던가

 

태에서 죽어서 나오지 않은 것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해산할 때 죽는 것이 나았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죽음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욥이 임계점에 다다랐습니다.

물이 80, 90도에서 끓지 않는다고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물이 끓지는 않지만 물의 내부는 계속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욥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는 신앙적인 언어를 말하고 있었지만 그 속이 아무 문제없이 평안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신앙이 좋다 하더라도 자식의 죽음 앞에 무덤덤한 부모가 어디에 있습니까?

죽을 것 같은 육체의 고통을 평안히 받고 있을 사람은 없습니다.

욥은 참았습니다.

신앙으로 인내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누르고 눌렀던 속상한 마음과 슬픔이 입으로 터져 나왔습니다.

안에서 썩어 들어가고 있던 그 아픔이 입 밖으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 지점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있습니다.

31절은 그 후에로 시작합니다.

공동번역은 마침내로 번역했습니다.

욥의 고난과 마침내욥이 불평을 쏟아내기 시작할 때까지의 시간이 고민입니다.

욥은 죄를 지어서 고난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욥의 고난은 시험이었습니다.

울타리를 치워도, 몸을 쳐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여전히 신앙을 유지할 수 있느냐의 시험이었습니다.

욥은 이 시험을 잘 치렀습니다.

원망하지 않고 신앙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바로 상을 주지 않으셨나 입니다.

그 정도 고통을 당했으면 빨리 상황을 종료하고 보답을 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시험을 잘 치렀는데도 왜 계속 고통 속에 내버려두셨을까요?

이 시험에는 얼마동안이나 견딜 수 있나 하는 시간도 포함이 되는 걸까요?

그 후에’, ‘마침내라는 표현을 보면 마치 하나님은 욥이 불평을 할 때까지 기다리신 것처럼 보입니다.

 

창세기 171절에 보면 하나님은 아브람이 99세 때에 다시 나타나십니다.

1616절에서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라엘을 낳았을 때 아브람의 나이는 86세였습니다.

13년이나 아브람에게 나타나지 않고 기다리셨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기다리고 계셨을까요?

아브람이 하갈을 취할 때까지만 해도 아브람은 자기 힘으로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99세입니다.

도저히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다시 아이를 준다고 할 때 엎드려 웃으며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이 자신의 힘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때까지 기다리셨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 때까지 기다리셨습니다.

 

욥기 1,2장과의 욥의 모습은 인내하는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욥기 3장의 욥의 모습은 불평하는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점이 있습니다.

1장과 2장에서 욥은 자기에게 닥친 고난을 자기 신앙으로 이겼습니다.

자신이 믿고 있는 하나님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신앙의 힘으로 이겼습니다.

3장에서는 달라집니다.

더 이상 자신의 지식과 신앙으로 견딜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도저히 이길 수가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욥은 자신의 고난의 문제를 자신 안에서 꺼내 하나님께로 가지고 옵니다.

“20 어찌하여 고난 당하는 자에게 빛을 주셨으며 마음이 아픈 자에게 생명을 주셨는고

 

“23 하나님에게 둘러 싸여 길이 아득한 사람에게 어찌하여 빛을 주셨는고

 

자신을 넘어 하나님과의 씨름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냥 감내하는 것을 넘어 고난의 이유를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때를 기다리셨습니다.

욥이 고난의 문제를 하나님께 가져오기를, 하나님께 질문하기를 기다리셨습니다.

욥기가 2장에 끝났다면 욥의 신앙은 그 모진 고난을 겪은 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욥이 고난을 통해 새롭게 성장하기를 위해 기다리셨습니다.

자신이 아끼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하나님도 고통스럽습니다.

인류를 위하여 사랑하는 예수님의 고통을 지켜보셨던 하나님은 욥을 위하여 욥의 고통을 지켜보셨습니다.

욥은 이제 고통스러운 질문을 통하여 더욱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게 될 것입니다.

신실한 사람도 절망할 수 있습니다.

신실한 사람도 탄식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절망과 탄식을 하나님 앞에 가져가야 합니다.

그럴 때 그 절망과 탄식은 고통을 넘어 새로운 신앙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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